[代를 잇는 家業…2세가 뛴다] (5) 훼미리‥마케팅 이끄는 맏딸 '아버지의 우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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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는 '경영고문'
3개 국어 능한 '아이디어 뱅크'…온라인몰 개척 판로 확장도
국내 넘어 세계로…
아놀드 파마ㆍ보그 OEM 공급
내년 中ㆍ대만 판매 본격화
30년 동안 우산 제조 한우물을 파 온 장인(匠人)이 있고 그 가업을 물려받은 딸이 있다. 딸은 회사가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자 아예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며 남편과 남동생 부부까지 회사로 끌어들였다. 우산 및 양산 제조업체 '훼미리'의 이원식 사장(57)과 이미령 부장(31)이 주인공이다. 훼미리는 미국 '아놀드 파마'와 'MLB', 스페인 '보그', 일본 '푸키', 이탈리아 '에이치두에오' 등 세계적 우산 브랜드에 대해 국내 독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 납품권을 갖고 있다. 국내 시장점유율도 부동의 1위다.
이 회사의 모태는 이 사장이 1978년 창업한 경북플라스틱이다. 경북 영천 화산면에서 태어난 이 사장은 고교 졸업 직후 대구의 '제일프라스틱'에 입사했다. 또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아 20대 초반에 80명의 직원을 아우르는 공장장이 됐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회사 내 파벌싸움에 휘말려 떠밀리듯 퇴사한 뒤 경북플라스틱을 창업했다. 당시 지역 유망기업이던 모 우산업체 대표가 그를 직접 찾아와 외국 우산 샘플을 보여주며 "같이 일하자"고 제의한 게 계기가 됐다. 창업 초기엔 우산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만들다 1983년 우산 재질에 들어가는 '화이버글라스' 특허를 확보하면서 우산 완제품 생산에 본격 뛰어들었다. ◆신세대 딸,회사에 합류하다
단순한 '가내 수공업'에 머물렀을지 모를 회사를 환골탈태시킨 주인공은 그의 딸 이미령 부장이다. 일본 세이부분리대에서 경영학을,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회계학 석사 과정을 마친 이 부장은 귀국 후 대구의 작은 무역회사에 근무하다 2007년 훼미리에 입사한다. 믿고 의지할 파트너가 절실했던 이 사장은 딸의 입사를 반겼다. 그는 "사업하면서 혼자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딸이 와서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입사하자마다 당차게 일을 몰고다녔다. 인터넷 홈페이지부터 뜯어고쳤다. 촌스럽기 그지없던 홈페이지를 새 단장했다. 이 과정에서 광고영업을 하던 지금의 남편도 만났다. 하지만 홈페이지 하나를 바꾸는 과정에서도 "굳이 왜 바꾸느냐"는 등 사내의 뒷말과 시기가 무성했다. 이 부장은 "직접 와서 보니 회사가 너무 고인 물 같았다"며 "오래된 건 다 바꾸고 새롭게,크게 판을 벌여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실제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제품 판로를 개척하면서 2009년 한 해에만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성 아이돌 그룹의 인기 멤버를 동원한 오프라인 마케팅도 펼쳤다. 이 사장은 "예전 훼미리였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내년부터 인터넷 및 중국 시장 판매가 본격화되면 회사가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이 부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활용해 현재 훼미리의 주력 상품인 '푸키'와 '에이치두에오' 브랜드 우산에 대한 독점 OEM 공급권을 따냈다. ◆경영은 맺고 끊는 데서 출발
이 부장은 훼미리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아버지의 '경영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회사의 고민거리를 하나하나 깔끔하게 정리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우산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던 대만 상인들과 손잡고 중국 샤먼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후 6년간 쓰디쓴 실패의 연속을 겪었다. 이 사장은 "말이 안 통하니까 중간에 통역사들이 현지인들과 작당해 돈을 빼돌리는데 도무지 속수무책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잠시 고무장갑 제조 쪽으로 눈을 돌렸다. 1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지어 양산에 나섰지만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유통 판로를 뚫지 못하자 그만 포기해 버린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번쩍 정신이 들어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상호를 '훼미리'로 바꿨다. 이후 아놀드 파마,보그 등과 국내 독점 공급 라이선스 계약을 따냈다. 20여년 전부터 대만을 부지런히 오가던 이 사장의 노력이 입소문을 타고 퍼진 것이다. 무리하게 확장해 회사에 부담을 주던 조직을 도려내는 데도 '똑 부러지는' 이 부장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서울 사무소를 여러 개로 늘리고 당시 회장이던 이 사장 밑에 사장을 3명이나 두면서 무리하게 판로 확장을 꾀했던 걸 정리한 것.이 사장은 사장 3명이 관할하던 파트를 개별법인으로 분사시키면서 서울 사무소 대구 본사를 제외하고 모두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도 이 부장은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점에서 모든 사안을 파악하도록 끝없이 잔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훼미리는 국내에 공장시설은 없고 모두 중국에서 현지인 소유 공장과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생산하고 있다. 올해 훼미리는 창립 후 처음으로 중국 선전과 장시공장에서 생산한 우산과 양산을 현지에 납품할 수 있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샤먼에서도 공장 2곳과 계약을 체결해 중국 내 생산 거점은 총 4곳으로 늘어났다. 올해 예상매출은 100억원,생산물량은 350만~400만대로 대부분 국내용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중국과 대만 등에서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그들은 기대하고 있다. 중국 내 비즈니스가 순항하면 정식 중국지사도 세울 방침이다. 이 부장은 "중국을 시작으로 세계에 훼미리 우산을 알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