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미 FTA와 '노무현 정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작은 장사꾼이 아니라,우리 경제의 미래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의 변화까지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도전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우리는 어떤 개방도 충분히 이겨낼 국민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과거 개방 때마다 많은 반대와 우려가 있었지만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합의로 야당의 공세에 직면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4월 행한 대국민 담화문 내용이다. 진보정권을 기치로 내건 노무현 정부는 한 · 미 FTA 체결로 곤욕을 치렀다. 지지층이 이탈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낮은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눈앞의 정치적 이해만 생각했다면 포기하는 게 옳았다. 노 전 대통령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체결된 게 바로 한 · 미 FTA였다. 당시 사실상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반발했다. 반 노무현 정서가 확산되면서 2006년 말부터 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압박해온 터였다. 1년 뒤로 다가온 총선에서 불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2007년 2월 탈당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던 당의 간판까지 내렸다. 말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의 흔적까지 지워버린 셈이다.

잊혀진 것 같던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로 등장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6월 지방선거였다. 노무현 추모 분위기로 민주당은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좌희정 우광재'로 통했던 노무현 맨들이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측근이다. 노무현 바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이 요즘 부쩍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다.

민주당이 다시 한 · 미 FTA에 대해 반대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보논리에 휘둘리면서 자동차 분야를 대폭 양보한 '퍼주기 협상'인 만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로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인 게 사실이지만 민주당의 반대논리에도 함정이 있다. 우선 안보논리가 개입됐다고 비판한 대목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을 개연성이 높다. 경제논리로만 푸는 게 정답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안보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이 언제 어디서 도발할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전쟁 억제를 위해선 한 · 미 동맹 강화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이로 인한 보이지 않는 소득은 덤이다. 한 · 미 간에 균열이 생겨 '코리아 리스크'가 커진다면 우리 경제엔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북한이 바라는 바다. 안보논리 운운하는 게 되레 한가해보이는 현실이다. 퍼주기 협상이라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분야에서 양보한 것만 놓고 얘기하면 그렇다. 협상은 주고받기다. 우리는 농민과 직결된 농 · 축산물 분야에서 양보를 얻어냈다. 민주당이 비판하는 자동차 협상에 대해 자동차업계는 "별 영향이 없다"며 FTA 타결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중산층 · 서민 정당을 자임해온 민주당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게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할 생각이라면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 결단한'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한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