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중국, 경제대국 외교소국

미숙한 외교로 미국만 반사이익
北 만행 질타해야 리더십도 생겨
북한군의 기습적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응하는 중국의 자세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그것도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 포탄을 퍼붓는 반인륜적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비난은커녕 감싸안기에 여념이 없다. 북한의 도발이 아니라 남북 간 교전으로 상황을 호도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사건의 핵심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세계를 이끄는 G2(주요 2개국)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2~3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하지만 외교적 측면에서는 아직도 미숙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힘에만 의존한 외교로 다른 나라의 반발을 초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미 외교 문서에도 유럽 인도 일본 아프리카 외교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중국이 힘을 과시하는 외교로 전 세계의 친구를 잃고 있다"고 평가한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을 정도다. 티베트 문제로 한때 갈등을 겪던 프랑스를 꺾기 위해 수차례에 걸친 사르코지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을 유보하고,구매사절단이 의도적으로 프랑스를 건너뛰는 등의 압력을 가해 끝내 무릎을 꿇린 것이 '힘의 외교'의 좋은 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그런 양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중국은 희토류 수출금지 카드까지 동원하며 일본을 굴복시켰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경제 제재 조치까지 취한 것은 과도한 대응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로 인해 중 · 일 관계가 소원해지고 미 · 일 결속이 강화된 것은 물론 다른 나라들이 희토류 개발을 서두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동남아 국가들과의 시사군도 및 난사군도 영유권 다툼에서도 '힘의 외교'의 부작용이 드러났다. 이들 나라가 G2의 또 다른 축인 미국에 도움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서 무력 사용을 반대하며 아시아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을 상대로 미 · 일 · 아세안 연합전선이 형성되면서 미국의 영향력만 확대됐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외교적 미숙함은 한국 관련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연평도 만행은 명백한 증거가 뒷받침되는 사건인데도 무조건 북한을 비호하는 것은 국제적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포용력이 큰 게 아니라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는 중국이라면 국제적 리더십도 생기지 않는다. 중국 이질론(異質論)만 확산시킬 뿐이다. 더구나 장기적 시각으로 볼 때 중국이 더 잘 지내야 할 상대는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다. 한국과 중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 관계가 됐고 이를 통해 서로가 적지 않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북한을 지켜주면 미군과 국경을 맞대지 않는다지만 핵보유국인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고 보면 왜 북한편만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연평도 포격 사건을 둘러싸고도 실속을 챙긴 것은 미국이다. 한 · 미 군사훈련을 명분으로 중국의 코앞인 서해에 핵항공모함을 진출시키는 기회를 잡았고,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보다 유리한 내용으로 타결시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한층 키우는 성과도 올렸다.

중국의 외교정책은 '도광양회(韜光養晦 ·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 · 해야 할 일은 한다)'를 거쳐 '돌돌핍인(口出口出 逼人 · 기세 좋게 남에게 압력을 가한다)'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힘을 과신한 나머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국 스스로 되짚어보기 바란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