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장윈, 돈 좇는 중년…詩 좇는 젊음…韓ㆍ中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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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장편소설 교류 첫 프로젝트참 다르다. 시(詩)로 상징되는 '순수'를 좇아가는 1980년대 중국 젊은이들과 세상의 주인을 '돈'이라고 믿는 2000년대 한국의 중년들.그런데도 두 소설이 묘하게 닮았다. 두 작가 모두 자본주의의 피폐함과 욕망으로 점철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박범신 '비즈니스', 장윈 '길 위의 시대' 출간
소설가 박범신씨(64)와 중국 여성작가 장윈씨(56)가 장편소설 《비즈니스》와 《길 위의 시대》(자음과모음 펴냄)를 각각 내놓았다. 문학계지 '자음과모음'은 중국 격월간지 '소설계',일본 잡지 '신조'와 함께 지난 5월부터 각국 대표 작가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문학 작품을 교환연재함으로써 아시아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기로 한 것.《비즈니스》와 《길 위의 시대》는 장편소설 교류작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8월부터 한국과 중국 잡지에 동시에 연재됐다. 지난 봄 《은교》를 펴내며 《촐라체》《고산자》에 이어 '갈망의 3부작'을 끝낸 박범신씨는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을 성찰하던 시각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돌렸다.
《비즈니스》의 무대는 서해안에 있는 'ㅁ'시다. 시장은 대중국 교역 전진기지라는 명분으로 엄청난 정부 예산을 확보하고 신시가지를 만든다.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하루가 다르게 땅값이 치솟는 신시가지에 비해 퇴락해가는 구시가지.
서울을 떠나 가족과 함께 몰락해가는 구시가지로 이사온 서른아홉 살 주부 '나'는 중학교 3학년생인 아들 정우의 학원비와 과외비를 벌기 위해 매춘에 빠져든다. 대학시절부터 유부남이나 잘 나가는 사업가를 '스폰서'로 뒀던 친구 주리의 영향 때문이다. 그녀는 적은 월급을 내미는 남편 대신 아들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투자하는 더 큰 '비즈니스'를 꾸려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를 만나면서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그'가 시장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의 정부인 나의 정체와 매춘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작가는 "경제 · 문화적 편차가 정상 수준을 벗어난 서울의 강남과 강북만이 아니라 전국 어느 도시를 가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는 양지와 음지처럼 선연히 분리 · 계급화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려온 산업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닌데 소중한 영혼의 가치들을 잃어버렸고 생텍쥐페리의 표현대로 '재화(財貨)의 감옥'에 갇혔다"고 말했다.
《비즈니스》는 중국에서도 단행본으로 출간됐지만 그 이전부터 잡지를 통해 이미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웨이신홍 '소설계' 편집장은 "이야기의 주제가 중국의 현 실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대중의 정서에 잘 부합된다"며 "감동을 주는 소설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성취했다"고 평가했다. 박범신씨는 내년 1월 베이징국제도서전에 참석할 예정이다. 장윈의 《길 위의 시대(원제:行步的年代)》는 중국인이 기억하는 낭만의 과거를 그렸다. 루쉰문학상 자오수리문학상 등을 받으며 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장윈은 물질의 치명적인 달콤함만을 좇지 않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것들에 집중하는 작가다.
이번에는 순수함을 따라 광활한 대륙의 황토 고원을 유랑하는 젊은이들을 창조해냈다. 지방 소도시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던 천샹은 유랑길에 도시를 방문한 시인 망허에게 반해 하룻밤 정을 나눈다. 그러나 이튿날 떠나버린 망허의 아이를 가진 천샹은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짝사랑하던 학교 선배 라우저우와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 샤오촨을 낳는다.
망허는 권위있는 학술기관을 그만두고 시를 찾아 방랑길에 나서는데 예러우라는 대학원생을 만나면서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몇 년 후 우연히 서점에 들른 천샹은 망허의 새 시집을 발견하고 청천병력같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장윈은 "1980년대 중국은 어디를 가든 유랑하는 젊은 시인,철학자를 한 명쯤 만날 수 있었던 낭만의 시대였다"며 "인간의 본성과 금기의 충돌,청춘의 아름다움과 장렬함,거짓말과 신뢰,생명과 비애,자유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시가 상징하는 것들도 사라져버렸지만 고집스럽게 세월을 거슬러 순수한 사랑을 그려낸 작품이다. 각권 1만2000원.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