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곁에 두고 싶은 책] 레 미제라블‥ 19세기 프랑스가 눈에 보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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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최고의 정의는 양심"고전이라도 단숨에 읽히는 책은 흔하지 않다. 유명한 제목과 이름 있는 이들의 서평에 이끌려 어떻게든 읽어보려 펴들었다 끝내 통독하지 못하고 마는 책이 수두룩하다. 번역이 난삽해서일 수도 있고 애당초 일반인이 읽기엔 내용이 지나치게 난해하기 때문인 수도 있다.
레 미제라블 빅토르위고지음 / 하서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 불쌍한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실로 놀라운 경우다. 잡았다 하면 놓기 힘들 만큼 흥미진진한 데다 정보(19세기 초 프랑스의 사회와 풍습)와 메시지(자유 · 평등 · 박애)라는,동서고금 모든 저서가 지향하는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위고는 열정과 노력의 대명사다. 시인이자 극작가 · 소설가로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수많은 걸작을 썼을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3세에 항거하다 19년이나 망명생활을 했다. 또 상원의원으로서 빈민 구제,언론 자유,여성 · 아동의 권리,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주창하는 등 정치 · 사상가로도 실천적 모습을 보였다.
《레 미제라블》은 1845년에 집필하기 시작,망명 중이던 1861년 탈고한 것으로 평생 관용과 통합을 외쳤던 그의 삶과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은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복역한 장 발장의 출감 후 사망 시까지 17년간의 삶을 따라가는 형태로 구성됐다.
배경은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정권이 들어섰다 무너지고 왕정과 공화정이 엎치락뒤치락하던 혼돈의 시대다. 정치적 혼란도 혼란이요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 · 사회적 변화는 신흥 부르주아 계층을 탄생시키는 한편 농민에서 노동자로 전락한 하층계급의 삶을 이전보다 더욱 혹독하게 만든다. 책은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름 끼칠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악당의 전형인 테나르디에 부부에 대한 묘사는 그중 하나다. '그들은 중류와 하층 계급의 중간이었다. 후자의 결점과 전자의 모든 악덕을 함께 지녔다. 노동자의 고매한 정열이나 시민의 성실한 질서 어느 쪽도 갖고 있지 않았다. '
테나르디에 부부 밑에서 지내는 동안 온갖 구박을 받는 코제트의 상황을 묘사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에포닌과 아젤마,코제트 세 아이의 나이를 합쳐도 24세가 안 됐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른사회 전체를 대표하고 있었다. 한쪽엔 부러움 또 한쪽엔 경멸이 있었다. '
그러나 책은 장 발장과 그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 밀리에르 주교를 통해 이런 세상에도 정의와 관용이 존재함을,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세상과 사람을 구원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정신도 정원'이라는 밀리에르 주교의 말이나 '정의에 대한 모욕' 운운하는 자베르 경감에게 장 발장이 외치는,'최고의 정의는 양심'이란 말이 그것이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결혼식 이후 마리우스에게 그동안 쓰던 이름은 가짜이고,진짜는 전과자 장 발장이라고 털어놓는 대목 또한 거짓과 술수로 가득찬 듯한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고 싶은 이들에게 답을 제시한다. "옛날에 나는 살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 오늘은 살기 위해 이름을 훔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