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2세가 뛴다] (6) 혁산압연…자부심 빼닮은 아들 "기름때 장갑은 내 운명"

닮았지만 다르다
인하대 금속공학과 동문
엄격한父, 직원 야단치면…자상한子, 뒤에서 다독여

이젠 인생 동반자
도산 위기 수없이 넘으며 동고동락으로 키운 무한신뢰
"이형압연재 국산화 뿌듯"

"그렇게 인터뷰하면 듣는 사람이 헷갈리잖아.말을 간략하게 하라고."(이경선 혁산압연 대표 · 74)

"(기자를 보며)솔직히 제 말이 이해 잘 되세요? 사장님 말이 이해 잘 되세요?"(이준혁 상무 · 37)부자지간인 두 사람은 인터뷰 중에도 수차례 아옹다옹했다. 아들인 이 상무가 "사장님은 결정 사항에 대해 내가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다'고 얘기하면 기분 나빠하신다"고 말하자 옆에 앉아있던 이 대표는 "회사의 일반적 상하관계라면 벌써 목을 수십 번 쳤을 것"이라며 응수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10년간 동고동락했다. 회사가 위기를 겪을 때면 빚을 내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난 후 두 사람은 빈털터리로 집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집을 나란히 저당잡히기도 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같이 해외를 돌며 시장을 뚫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다보니 국내 이형압연재 전문생산 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동안 혁산압연은 살아남았고 국내 선두 업체가 됐다. 두 사람은 자주 의견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공단 주변에서는 부자(父子)의 호흡이 최고라며 부러움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동종업체들 문닫는 동안 국산화 앞장혁산압연은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을 퇴직한 이경선 대표가 1987년 설립한 스테인리스 이형압연재 생산업체다. 이형압연재는 스테인리스를 가공하고 절삭해 다양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주요 수출국은 유럽이며 캐나다,일본,싱가포르,중국,미국 등에도 제품을 내보내고 있다.

혁산압연은 2000년대 초반에는 주로 시계 밴드 등을 만들었다. 국내 주요 시계업체들이 이 회사가 만든 이형압연제를 썼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저가 시장을 싹쓸이하면서 한때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혁산압연과 함께 이 분야를 주도했던 국내 회사 세 곳이 모두 문을 닫거나 매각됐다. 하지만 혁산압연은 100분의 1㎜ 수준까지 오차를 조절해야 하는 고정밀 제품군으로 옮겨가면서 위기를 돌파했다. 2008년에 매출 55억원을 올렸고 유럽의 금융위기가 불거진 지난해에는 2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는 다시 주문이 밀려들면서 매출이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 참여한 후 가업의 무거운 짐 절감이 상무는 외아들이다보니 어릴 때부터 회사를 찾는 일이 잦았고 특별한 가업승계 과정 없이 회사 일에 녹아들었다. 대학에서도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부친인 이 대표의 인하대 금속공학과 동문 후배다. 이 상무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회사에서 일을 배웠고 방학 때는 매일 일을 해야 했다. 군 제대 후 남들처럼 어학 연수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결국 회사 일에 더 매진하게 됐다. 기름때 가득한 공장에서 하루종일 원료 포장을 해야 했을 때도 별다른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가업승계의 무거운 짐을 어려서부터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 상무는 "대학생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해외 전시회를 쫓아다녔다"며 "대학 친구들은 '취직걱정 없고 해외여행도 하니 좋겠다'고 얘기하지만 어릴 때부터 회사를 보아온 나에게 가업승계는 절박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경영에 참여한 지 10년 정도 됐지만 벌써 집을 몇번 담보로 잡혔는지 세기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은행 대출을 통해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서 사장님과 나는 무일푼으로 집에 들어가야 하는 날도 많았죠."이 상무는 그때 가업승계가 갖는 부담감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2세가 경영에 참여하는 순간 1,2세대는 운명을 같이 합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면 한쪽이 어려울 때 다른 한 사람에게 기댈 수 있죠.하지만 1,2세가 경영을 같이 하다가 망하면 그야말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이 없죠.경영을 맡는 순간 당장 온 가족이 다음 달 매출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저한테는 가업승계는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

◆일에 대한 열정으로 쌓은 무한 신뢰

다른 2세들이 그렇듯 이 상무는 초기 고참 직원들과의 마찰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형압연재 분야는 엔지니어 개개인의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연륜이 있는 숙련 엔지니어들은 젊은 직원들과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상무는 과감히 이들 엔지니어를 내보냈다. 회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업승계처럼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도 기술 노하우 전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엔지니어들을 순환근무시키며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이 대표는 '히딩크식의 멀티플레이어'를 강조하며 힘을 보탰다. 이 상무의 열정과 일에 대한 집중력을 지켜보면서 이 대표는 "이제는 언제든지 대표 자리를 물려줄 수 있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아버지와 직언을 서슴지 않는 아들은 지금도 가끔씩 다툰다. 하지만 이제는 각자의 역할을 찾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됐다고.이 상무는 "직원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사장님이 야단치면 나는 다독이는 식"이라며 "이처럼 서로의 다른 모습이 상호 보완이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혁신압연도 조금씩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그동안 한국 업체들이 엄두를 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형압연재를 국산화하며 주목받고 있다. 인천제철 시절을 포함해 45년 가까이 근로자들과 현장을 경험한 이 대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상무는 "최근 한 해외업체와 500만달러 규모의 납품계약을 체결했다"며 "내년에는 이것만 가지고도 매출 7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