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에쓰오일 "내 本貫은 울산"…온산공장 한달에 2~3번 찾아 '끈끈한 情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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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메드 A 수베이 사장
"제 이름은 이수배입니다. 본관은 울산입니다. "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아흐메드 A 수베이 에쓰오일 사장(49)은 처음 만나는 한국인과 명함을 교환할 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의 이름 '수베이'를 한국식으로 응용한 기발한 발상에 상대방은 웃지 않을 수 없다. 본관은 에쓰오일의 생산 공장이 있는 온산 인근의 울산을 끌어다 쓴다. 수베이 사장이 비즈니스 미팅이든 사적인 자리에서든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 빼놓지 않는 질문은 상대방의 본관과 고향이다. 그 지역의 역사와 특산물,지역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가는 게 그가 즐겨쓰는 대화법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거래처 사장에게는 서툴지만 우리말로 "닭갈비로 유명한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죠"라고.
◆한국의 멋에 매료된 아람코의 '아시아통(通)'
수베이 사장은 에쓰오일의 최대 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에서 파견된 전문 경영인이다. 미국 북아리조나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스탠퍼드대에서 최고경영자(CEO) 과정을 수료했다. 아람코의 대표적인 아시아통으로,일본법인장도 지냈다. 2008년 3월 한국에 부임한 그는 요즘도 틈틈이 회사 인근의 서점에 들러 한국 관련 사진집이나 영어로 된 한국 역사 · 여행서를 찾는 등 한국 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매일 아침 한국 조간 신문의 헤드라인과 주요 기사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놓은 스크랩 자료를 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애창곡은 조용필의 '친구여'.한국 생활 만 3년째를 맞는 그는 입맛도 완전히 한국식으로 변했다. 삼복 더위에 시뻘건 깍두기 국물을 술술 푼 삼계탕을 먹으며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사자성어까지 구사할 때면 영락없는 한국인 '이수배'다.
◆정(情)이 스킨십 경영의 기본
수베이 사장이 한국인의 감성 중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이 '정(情)'이다. 소통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하는 그에게 끈끈한 정 문화는 연구 대상이다.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핵심 역시 '조직과 임직원에 대한 관심'이다. 수베이 사장은 평소 "조직의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CEO들은 '관리자(manager)'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leader)는 구성원들을 보살피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이끌어 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CEO는 혼자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늘 직원들에게 관심을 두고 평범한 이들로부터 능력 이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온산 공장을 한 달에 2~3번 방문하며 현장 인력들과 살갑게 스킨십을 나누고,매주 각 부문 팀장들과 돌아가며 점심을 함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신기 에쓰오일 홍보상무는 "공장 직원들과 항상 한국어로 인사하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은 또 다른 형태의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며 "한국의 정 문화를 스킨십 경영에 접목하는 것만 봐도 한국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독창적인 CEO 역할론
C는 customer(고객),E는 employee(직원),O는 owner and other stakeholders(주주).수베이 사장의 'C.E.O론'이다. 회사는 고객과 직원,주주 및 이해관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C.E.O'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선봉에 서있는 사람이 CEO라고 강조한다. 에쓰오일은 C.E.O의 이익 극대화를 경영 모토로 삼고 지난해 7대 전략과제를 설정,실천에 옮기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객중심 경영 △최고의 업무환경 추구 △탁월한 운영 효율성 △체계적인 사회공헌활동 △투명한 지배구조 △최적 자본효율성 확보 △지속성장 기반 구축 등이다. 강 상무는 "경영 모토인 C.E.O와 7대 전략과제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각 실천과제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사내외 평가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
에쓰오일은 올해 집중휴가제라는 조그마한 실험을 했다. 직원들에게 2주간의 장기 휴가를 보장하는 복지 제도의 하나다. 업무 몰입도와 생산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수베이 사장이 내린 결정이다.
임직원들은 본인에게 부여된 연간 휴가한도 내에서 '반드시 2주 이상 연속된 휴가'를 써야 한다. 연초에 직원들이 휴가 계획서를 제출하면 인사과에서 취합해 전사적으로 휴가 실적을 관리한다.
그동안 몇몇 국내 기업들이 이런 유형의 휴가제를 도입했지만,상사 눈치보기 등으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에쓰오일은 업무 대행체제를 도입했다. 임원이나 팀장이 집중 휴가를 떠나면 다른 부문의 팀장이 고스란히 대리 업무를 맡도록 했다. 공장 임원이 본사에 올라와 경영 지원담당 임원의 업무를 대행하기도 했고,싱가포르 지사장 휴가 때는 본사 직원이 2주 동안 싱가포르에서 업무를 대신하기도 했다. 수베이 사장은 "직원들은 집중휴가를 통해 삶을 재충전할 수 있고,업무 대행체제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궁극적으로 사업팀 간 신뢰와 소통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