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예비 CEO 최대 관문은 '회장 앞 20분 PT'
입력
수정
임원 해외연수 마지막 과정SK그룹 임원인 A씨.그는 국내에서의 6개월에 이어 해외에서 6개월간 연수를 마치고 지난달 귀국했다. A씨에게는 요즘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어느 부서로 인사발령이 날까하는 '자대 복귀'에 대한 걱정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프레젠테이션(PT) 때문이다. 지난 1년간의 연수 성과를 최태원 회장(사진)에게 보고하는 PT는 연수 과정의 하이라이트이자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다. 또 PT는 해당 연수국의 언어로 진행하는 게 원칙이다. 그는 서울 서린동 SK본사 인근의 영풍문고 빌딩에 마련된 연수 임원 전용 사무실로 매일 출근해 동료 임원들과 밤늦게까지 PT 예행 연습을 해보지만 회장 앞에서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한다.
연수국가 언어로 프레젠테이션
최태원 회장, 영어ㆍ중국어 질문
임원들 밤샘하며 예행연습
◆아무나 못 타는 승진 특급열차SK그룹의 대표적인 임원연수 제도인 GLDP(global leadership development program)가 예비 최고경영자(CEO) 양성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GLDP는 "사업 확대를 통한 성장을 위해선 언제나 가동할 수 있는 'CEO 풀(pool)'이 넓어야 한다"는 최 회장의 뜻에 따라 2006년 시작됐다.
총 1년 기간으로,처음 6개월은 경기도 이천의 SKMS(SK경영관리시스템)연구소에서 SK의 경영 이념과 외국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나머지 6개월은 자신이 직접 세운 계획과 커리큘럼에 맞춰 자유롭게 연수 주제와 연수 대상국을 정해 해외를 다녀온다.
'중국 정부의 시장 · 기업관'을 주제로 중국에서,'미국 통신시장의 변화'를 주제로 미국에서 연수를 진행하는 식이다. 가족 동반은 허용되지 않는 대신 체류 생활비와 연수비,차량 렌트비 일체를 지원받는다. "해당 계열사마다 그 사람이 빠지면 회사가 안 돌아갈 것 같은 그런 후보만 보내십시오." 해외 연수가 '물먹은' 임원들의 대기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 회장이 지시한 선발기준이다. 평범한 임원이 자신이 가고싶다고 자원하거나 이리저리 줄을 대도 갈 수 없다는 얘기다. SK 관계자는 "GLDP는 각 계열사별로 탁월한 성과를 낸 임원들만 탈 수 있는 특급열차"라고 전했다.
◆2시간 같은 '20분 PT'
GLDP의 마지막 단계인 PT는 임원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개인당 15~20분이 주어지는 PT에서 각 임원들은 자신들이 1년간 보고,듣고,느낀 것을 압축해 해당국의 언어로 발표해야 한다. 영어에 능통하고,중국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최 회장 앞에서 외국어로 말하는 것 자체가 임원들에게는 압박이다. PT 중간 최 회장이 툭툭 던지는 돌발 질문을 여유롭게 넘기는 것도 PT 성공의 관건이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연수과정 마지막에 PT를 넣은 것은 각 임원을 최종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1년간 쌓은 경험과 지식을 공유해 사업 구상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GLDP 과정을 운영하면서 쌓여진 예비 CEO 풀은 70여명이다. 1기 GLDP 수료자인 박봉균 SK루브리컨츠 사장이 GLDP 동기 중 처음으로 CEO 자리에 올랐다.
올해부터는 전무급으로 연수 대상이 확대되긴 했지만,아직까지는 상무급 위주로 교육이 진행돼 GLDP 연수 임원들이 본격적으로 CEO에 오르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권오용 SK브랜드관리실장은 "글로벌 감각을 갖춘 인재들을 CEO 풀로 육성하고 확보하겠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라며 "그룹의 경영 화두인 지속 성장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