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80% 동의하면 현대그룹 우선협상 자격 잃어

현대건설 MOU 해지 수순

MOU 해지냐…본계약 거부냐
17일 주주협의회에 안건 올려
현대차와 협상 가능성도
줄소송으로 장기표류 우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가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빌린 1조2000억원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제출한 2차 소명서(대출확인서)가 불충분하다고 밝히면서 현대건설 매각이 새 국면을 맞았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자금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음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과의 협상을 중단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르면 20일,늦어도 22일까지는 주주협의회 의결을 거쳐 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싼 논란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채권단 "현대그룹 소명 불충분"

법률자문사인 법무법인 태평양은 15일 열린 주주협의회 실무자회의에서 현대그룹의 2차 대출확인서가 자금출처 증빙 자료로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회의에 참석한 8개 채권금융회사(현대그룹 계열인 현대증권은 불참)는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이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과 진행하던 매각협상을 중단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17일 열기로 한 주주협의회에 현대그룹과의 양해각서(MOU)를 해지하는 안건이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채권단 내부에선 MOU 해지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현대그룹이 법원에 MOU 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만큼 법원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주식매매 계약을 맺지 않는 쪽이 유리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정책금융공사,우리은행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에서 조율한 후 17일 주주협의회에 안건을 부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2차 대출확인서에서 나티시스은행 예치금에 제3자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으나,채권단이 요구한 대출계약서 또는 구속력 있는 텀 시트(term sheet · 세부계약 조건을 담은 문서) 제출은 거부했다.

◆80% 주주 찬성하면 협상 중단17일 주주협의회에 상정될 예정인 MOU 해지 안건 또는 주식매매계약 부결 안건은 주주 80%의 동의가 있으면 가결된다. 각 채권금융회사들은 20일부터 22일까지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만약 20일 하루 만에 의결권 기준으로 80% 이상의 주주가 동의하면 절차가 마무리된다.

채권은행들이 갖고 있는 의결권 비율은 외환은행 24.99%,정책금융공사 22.48%,우리은행 21.37%,국민은행 10.20%,신한은행 8.22%,농협 6.28%,하나은행 4.06% 등이다. 금융권에선 주주협의회 실무자회의에서 한 차례 방향이 조율된 만큼 안건이 상정되면 통과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MOU를 체결한 뒤 두 차례에 걸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의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줬다"며 "이제는 최종 판단을 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매각 절차는

채권단은 현대그룹과의 매각 협상을 중단하더라도 현대건설 매각 절차를 백지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가급적 이번에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17일 주주협의회 안건에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과의 협상 개시 여부를 묻는 안건이 포함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일정을 채권단 바람대로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논란이 많은 만큼 곧바로 예비협상자와 논의가 가능할지는 현대그룹의 법적 대응과 여론 동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이 앞서 제기한 MOU 해지금지 가처분 신청 외에 현대건설 매각 절차를 막기 위한 본안 소송 등에 나설 가능성도 큰 변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채권단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한 뒤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언/이호기/이태훈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