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문화의 힘

한 달 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원연맹 제56차 총회에 국회대표단의 일원으로 다녀왔다. 추석 무렵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부터 국정감사에 이르기까지 꼬박 두 달을 밤낮없이 일한 뒤라 멀리 떠난다는 이유만으로도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다. 우리나라는 NATO의원연맹 회의의 옵서버 국가로 2008년부터 연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폴란드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위원회에 참석해 NATO 접촉 국가로서 파트너십과 우리의 입장을 개진하는 프레젠테이션도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폴란드까지는 직항편이 없어서 모스크바를 경유해 무려 16시간여 만에 바르샤바 '쇼팽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쇼팽공항의 첫 인상은 낭만 그 자체여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꽃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저마다 꽃 한 송이씩을 들고 설레는 표정으로 연인 혹은 가족을 기다리는 모습은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카페에 들어가면 연인으로부터 받은 꽃을 꽂아두었다가 다시 들고 갈 수 있도록 유리화병을 준비해준다고 한다. 꽃과 낭만의 일상화라고 해야 할까. 폴란드는 무려 123년간이나 외세에 의해 분할 통치됐고 수많은 유태인과 폴란드 정치범,집시들이 강제노동 후 학살됐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 나라다. 비극적인 역사를 지닌 나라지만 드러나는 모습은 매우 평온했고 사람들의 표정도 여유롭고 잔잔했다. 마치 고난을 딛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처럼 평화로웠다. 특히 올해는 쇼팽 탄생 200주년이어서 곳곳에 그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쇼팽에 대한 폴란드인의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폴란드산 보드카는 피카소가 극찬했다는 특산품으로 이에 대한 긍지가 대단해 유명한 보드카 이름도 역시 '쇼팽보드카'이다. 꽃시장 근처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어 연유를 물으니 쇼팽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폴란드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쇼팽 말고도 지동설을 주창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여성과학자 마리 퀴리부인이 있다. 전 세계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을 갖는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자 자산인 것 같다.

잠시 짬을 내 바르샤바 옛 시가지에 있는 퀴리부인 박물관에 다녀왔다. 그녀의 실험도구와 기념사진을 통해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19세기 여성과학자의 고뇌와 인내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쇼팽의 피아노곡이 잔잔히 흘러나오는 쇼팽 생가와 박물관은 마침 갔던 날이 '박물관 데이(Museum day)'여서 무료입장하는 행운도 얻었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비엘리츠카 지역의 소금광산에는 광부들이 만든 소금 성당과 조각상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나라를 빼앗긴 참담한 역사를 가진 폴란드가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문화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문화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김유정 < 민주당 국회의원 kyj207@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