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유통시장 뒤흔드는 '상생' 바람

16일부터 롯데마트가 5000원짜리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했다. 동네상권의 영세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거센 항의를 한 끝에 나온 고육책이다. 동네에서 배달해 주는 치킨의 3분의 1 가격에 치킨을 맛보려던 소비자들은 졸지에 입맛만 다시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들이 나란히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대형마트나 SSM을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들은 '공공의 적' 수준으로 낙인 찍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실 '5000원 치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프랜차이즈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오마이치킨'은 마리당 5000원이란 파격적인 가격으로 인기를 끌었다. 오로지 테이크아웃 방식인 오마이치킨점 앞에는 퇴근길 가장들이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당연히 가맹 희망자들이 본사에 몰려 들어 한때 가맹점이 300개를 돌파했다. 그러나 이 치킨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품질과 맛이 소비자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정보공개서에 게재된 이 치킨 브랜드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최근 3년간 개점 수 19개에 폐점 수는 75개로 폐점률이 394%에 달한다. 문 여는 가맹점보다 문 닫는 가맹점이 4배나 많다는 뜻이다. 가맹본부의 작년 매출액은 3억2443만원으로 최고 매출 가맹점의 3억8370만원보다 적다. 일개 점포 매출보다 적은 가맹본부가 무슨 수로 가맹점주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소비자들은 금방 알아차리고 발길을 돌렸고,가맹본부는 또 다른 브랜드를 만들었다. 애꿎은 가맹점주들은 차디찬 현실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상생(相生) 바람이 연말 유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가 상생을 밀어붙이는 사이 수많은 협력업체를 둔 유통업은 물론이고 제조업,건설업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협력업체 돕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상생은 '더불어 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착하게 살자'는 도덕 교과서 제1장과 같은 맥락이다. 대기업이 거부하기 힘든 화두다. 착하게 살자는데….

숱한 업종 중에서도 유통업은 사업의 특성상 상생 또는 동반성장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SSM은 적게는 수천개,많게는 수만개의 협력업체와 거래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SSM이 세력을 넓혀가면서 중소상인과의 갈등은 애당초 예고된 일이었다. 이쯤 되면 유통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기존의 리더십,소통능력,혁신의지 등의 덕목 리스트에 또 하나를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상생 마인드' 말이다. 상생의 유통업계 버전은 '윤리경영'이다. 을의 처지에 놓인 납품업체나 입점업체를 울리지 말자는 취지다. 윤리경영은 이제 보폭을 넓힐 때가 됐다. 거래하는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중소상인과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다. 롯데마트의 '5000원 치킨'은 신세계의 '이마트 피자'를 겨냥한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었지만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지 않았는가.

자영업자들은 폭리를 취하는 장사꾼으로 몰았다며 반발하고,소비자들은 한번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한민국에서 유통업을 하기란 '남사당의 줄타기'와 같은 모양이다.

강창동 < 유통전문기자·경제학 박사 cdka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