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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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살점 타는 냄새 번들거리는 입술들 소란한 불빛/이마에 번진다. 사내는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으로/짓이긴다. 차거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얼굴,그 눈/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고깃점/을 찢는다…무턱대고/씹어대던 질긴 시간은 목구멍에 걸려 컥컥거리는데/포만으로 더워진 뱃속 울렁거리며….'(이기성 '송년파티'중)
연말 잇따르는 송년회에 기꺼운 마음으로 참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게다. 밀린 일을 마무리하고 새해 계획 짜느라 바쁜 터에 연일 송년회까지 치르자면 피로가 걷잡을 수 없이 쌓이는 탓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피하기도 어렵다. 어떤 모임이든 나름대로 존재이유가 있어서다. 한 해를 보내는 마당에 '오붓하게 한번 모이자'는 제안을 어떻게 뿌리치겠는가. 세계 어느나라든 송년모임이 있지만 우리는 유별나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 공연이나 영화보기,불우이웃 돕기 같은 색다른 송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먹고 마시기가 대세다. 술에 절어 인사불성되는 사람이 여럿 나올 때까지 끝장을 봐야 '제대로 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가 이런 식의 송년회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35.6%가 가장 선호하는 송년회로 술이 없는 조촐한 모임이라고 답했다. 이어 문화공연 관람 19.3%,간단한 점심식사 14.3%였다.
반면 가장 꺼리는 송년회로 '먹고 죽자형'을 꼽은 응답자가 42.3%로 제일 많았다. 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거나 상사 · 선배가 끼는 송년회도 기피대상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의무 참석 송년회에서 직장 상사나 선배와 함께 과음하는 게 최악이란 얘기다. 하긴 회사 송년회에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업무상 재해라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부서장이 주최하고,직원 다수가 참석했으며,회사 경비를 쓴 송년회는 업무의 연장이란 의미다.
연말에 동료나 지인들끼리 만나는 것 자체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내키지도 않는데 통과의례처럼 참가해 분위기에 휩쓸려 망가질 때까지 먹고 마시는 관행에선 벗어날 때가 됐다. 과음은 평화와 질서의 적이요,부인의 공포요,자식 얼굴의 구름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북한의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 등 어두운 일이 유난히 많았던 올해를 차분하게 떠나보낼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연말 잇따르는 송년회에 기꺼운 마음으로 참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게다. 밀린 일을 마무리하고 새해 계획 짜느라 바쁜 터에 연일 송년회까지 치르자면 피로가 걷잡을 수 없이 쌓이는 탓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피하기도 어렵다. 어떤 모임이든 나름대로 존재이유가 있어서다. 한 해를 보내는 마당에 '오붓하게 한번 모이자'는 제안을 어떻게 뿌리치겠는가. 세계 어느나라든 송년모임이 있지만 우리는 유별나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 공연이나 영화보기,불우이웃 돕기 같은 색다른 송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먹고 마시기가 대세다. 술에 절어 인사불성되는 사람이 여럿 나올 때까지 끝장을 봐야 '제대로 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가 이런 식의 송년회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35.6%가 가장 선호하는 송년회로 술이 없는 조촐한 모임이라고 답했다. 이어 문화공연 관람 19.3%,간단한 점심식사 14.3%였다.
반면 가장 꺼리는 송년회로 '먹고 죽자형'을 꼽은 응답자가 42.3%로 제일 많았다. 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거나 상사 · 선배가 끼는 송년회도 기피대상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의무 참석 송년회에서 직장 상사나 선배와 함께 과음하는 게 최악이란 얘기다. 하긴 회사 송년회에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업무상 재해라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부서장이 주최하고,직원 다수가 참석했으며,회사 경비를 쓴 송년회는 업무의 연장이란 의미다.
연말에 동료나 지인들끼리 만나는 것 자체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내키지도 않는데 통과의례처럼 참가해 분위기에 휩쓸려 망가질 때까지 먹고 마시는 관행에선 벗어날 때가 됐다. 과음은 평화와 질서의 적이요,부인의 공포요,자식 얼굴의 구름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북한의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 등 어두운 일이 유난히 많았던 올해를 차분하게 떠나보낼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