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은행세 도입은 '맞춤형 규제'

외화부채 한정 경제충격 최소화…환율변동성 줄여 시장 안정 기대
은행의 외환거래 관련 부채에 대해 이른바 '은행세(Bank Levy)'를 부과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할 예정이어서 금융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거시건전성부과금'을 물리는 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며 내년 2월 국회에서 외국환 거래법 개정을 통해 이르면 하반기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은행세의 부과 대상은 은행의 비예금성부채 가운데 외화조달 관련 차입금 등으로 제한되며 세율은 0.1% 이내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은행세를 부과하고 있거나 추진 중인 주요국의 사례를 보면 국제통화기금(IMF)의 은행세 권고 수준과 거의 유사하다. 미국은 50여개 대형 금융사를 대상으로 총자산에서 기본자금과 부보예금(insured liability)을 제외한 비예금성 부채에 대해 0.15%의 '오바마 세금(은행세)'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국 역시 비슷한 기준으로 은행세 입법초안을 발표했고 스웨덴의 경우 이미 은행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주요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형 금융사들을 규제하는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은행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왔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과도한 위험을 추구하다가 실패한 금융사들에 투입된 막대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도입되는 은행세는 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과도한 차입경영을 통제하기 위해 '비예금성 부채(non-deposit liability)'에 부과되는 은행세와 달리,우리나라의 은행세 부과 대상은 외화부채에 한정돼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의 급격한 자본 이동,환율 충격 등에 민감한 우리 경제의 특수성을 반영해 이뤄진 조치로 과도한 자본유출입을 막기 위해 정부가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와 병행해 도입하는 '맞춤형 규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를 살펴보면 항상 위기의 서막은 외화 단기부채의 급속한 유입으로부터 시작했다. 따라서 급격한 자본이동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지가 은행세 제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정확한 세율 및 부과방법이 발표돼야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은행세가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선 직접적으로 외화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므로 은행의 수익성이 감소하게 되며 국내은행보다는 단기대외채무 비중이 큰 외국계 은행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은행의 외화 차입이 축소되겠지만 현재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하고 조달금리도 낮은 수준이므로 은행세로 인해 당장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들이 외채조달비용 인상 부담을 금융 소비자인 수출업체 등에 전가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양적 완화조치로 조달비용이 낮은 상태에서 은행들이 수출업체를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마당에 수수료를 크게 올리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이번 정부의 조치로 국내로 유입되는 달러 유동성이 줄어든다면 원화 강세를 진정시킬 수도 있고 더욱이 환율이 상승한다면 수출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재의 환율 움직임은 일정한 방향성을 보이지 않고 등락을 반복하는 상황인데 올해 이슈였던 환율전쟁의 여파와 주요국의 대응이 효과를 나타내기 전까지는 환율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은행세 부과조치는 환율변동성을 감소시킴으로써 금융시장 안정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과거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향후 새로운 위기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고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할 것이다.

조하현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