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통큰치킨과 동반성장

정운찬 전 총리가 이끄는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주 출범했다. 같은 날 롯데마트는 '통큰치킨'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두 사건의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이 동반성장위 회의에 참석한 뒤 판매 중단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최소한 의견교환 정도는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추측만 있다.

통큰치킨 판매 중단에는 '대기업과 중소상인들이 동반 성장하는 꿈'을 담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선 우리 사회의 명백한 퇴보다.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그런 식으로 지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택권만 빼앗겼다. 자영업자들의 일자리를 거대 자본이 빼앗아갈 것이라는 공포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선진국 개발도상국 가릴 것 없이 대형 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특정 품목으로 전문화한 카테고리 킬러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중소상인들이 쫓겨나는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한 대자본의 생산성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늘 비효율적인 곳을 찾아가 헤집어놓는다. 부당 염매 논란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롯데마트가 팔았던 '통큰치킨'은 동네 가게에서 파는 것의 반값 이하였다.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하라는 요구는 두 배,세 배의 가격으로 치킨을 사먹으라는 강요다. 프랜차이즈 업자들은 원가를 공개하며 '이익이 거의 없다'고 항변하지만,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통큰치킨을 계속 판매하라는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장의 자율조절 기능을 믿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도 문제다. 값이 싸고 품질마저 좋다면 시장은 초과수요를 양산해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길게 늘어선 줄이 그것이다. 5000원짜리 치킨을 사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거나 마트에 다시 들러야 하는 수고를 하게 만든다. 해저터널로 이어진 남해안 거가대교가 연말까지 무료 통행을 한다고 해서 '무료'가 아니다. 차량이 몰려 다리에 진입하는 데 두세 시간이 걸린다면 1만원 통행료를 내는 것보다 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값이 싼 치킨을 오래 기다려 사는 것이 집에서 주문해 먹는 값비싼 치킨보다 싸다고 단정할 수 없다. 서로 균형이 맞춰질 때까지 조절하는 기능을 시장은 갖고 있다.

사람들이 값싼 마트 치킨만 사먹는다면 동네 가게들이 망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이로 인해 소비가 더 줄어 새로운 실업자들이 또다시 탄생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영업자 몰락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새로운 산업에서 생긴 좋은 일자리들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자본의 신규 진입을 막아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산업혁명으로 가내수공업 노동자들이 쫓겨났지만 영화와 방송,관광과 레저 등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꾸준히 생겼던 것과 다를 게 없다. 통큰치킨 판매 중단이 새로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상생'사례가 돼선 안 된다.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규제하는 쪽으로 상생의 방향을 잡는다면 좋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우리 사회의 생산성만 지체될 뿐이다.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거나,이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산업을 적극 모색하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 동반성장의 해법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