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뉴스]에스키모 풍습 '아내 임대'의 역사 알아보니...

이누이트(널리 알려진 제국주의 시절 표현으론 에스키모)들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자신의 부인을 ‘하룻밤 선물’로 제공하는 것이 예의이고,이를 거절하는 것은 이누이트들에게 큰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식의 얘기가 널리 퍼져 있는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제국주의적 편견이 많이 가미돼 있는 듯해서)이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다른 한편으론 그와 비슷한 종류의 풍습이 아예 없었다면 과연 그같은 종류의 얘기가 만들어졌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하지만 이같은 ‘부인 임대’‘아내 접대’풍습은 한국사에선 전혀 비슷한 흔적도 찾을 길 없는 ‘남의 나라’얘기에 불과한 것일까?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삼국유사』에는 이누이트의 ‘부인 임대’풍습과 유사한 사례로 볼 수도 있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이 에피소드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데.

왕(문무왕)이 어느날 서제(庶弟) 차득공(車得公)을 불러 말했다.
“너를 재상으로 삼을테니 백관을 고루 다스리고 온 천하를 평화롭게 하라”
공이 아뢰었다.
“폐하 소신을 재상으로 임명하신다면 은밀히 나라안을 다니면서 민간의 요역이 수고로운지,세금이 무거운지,관리가 깨끗한지 등을 살펴본 후에 벼슬에 나가고 싶습니다.”
왕이 이를 허락했다.
차득공이 거사차림으로 서울을 나가 아슬라주,우수주,북원경을 거쳐 무진주에 이르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녔다…
무진주의 관리 안길은 공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 집으로 맞아 극진히 대접했다.
밤이 되자 안길은 처첨 세명을 불러 말했다.
“오늘 이 거사를 모시고 자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그중 한 처가 말했다.
“공께서 만약 죽을때까지 함께 살겠다는 허락을 하신다면 명을 받들겠습니다.”
(『삼국유사』 기이 제2권 문무왕 법민)660∼670년대쯤 김춘추의 서자인 차득공이 거사차림으로 밀행하던 과정에서 오늘날 광주 지방에 살던 안길이라는 향리 집에 묵게됐고,거기서 숙식뿐 아니라 주인의 아내로부터 하룻밤 섹스 서비스까지 제공받았다는 얘기가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안길이 ‘멀리에서 온 손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눈치채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청해 희생을 치렀던 스토리에 대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정복당한지 얼마 되지않은 옛 백제땅 출신인 안길이 살기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며 “어쨌든 북미의 알류트족과 일부 이누이트족 등 세계의 일부 종족에게 발견되는 부인임대 풍습이 한반도에서 어느정도 행해졌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것을 이누이트 등의 ‘부인 임대’‘부인 접대’풍습의 일환이 남아있거나 반영된 것으로 봐야할지,아니면 예외적인 ‘성상납’의 형태로 봐야할지 아리까리 한게 사실이다.다만 이를 부인 임대 풍습의 흔적으로 본다면 이누이트 들과의 문화적 친연성 등에서 생각하고,고려할 점이 더 많아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일부 대학에서 교수들의 여대생에 대한 성희롱 문제가 꾸준히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배울만큼 배운분들이 남부끄러운 일에 계속 연류되는 것을 보게되니 여러가지 상념이 스친다.문득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두눈 찌푸리고 봤을 『삼국유사』에 소개된 고대의 성상납 케이스보다 오늘날 (일종의)권력과 연계된 성문화가 고대사회보다 더 윤리적이고 문화적으로 규범화됐다고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다.

<참고한 책>
일연, 삼국유사,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2002
박노자, 거꾸로 보는 고대사-민족과 국가의 경계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한겨레출판 2010

김동욱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