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초점 빗나간 고층건물 안전대책

소방장비·인력 확충은 차선책
건물內 방재 능력부터 키워야
숭례문,정부중앙청사,이천 냉동창고,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서울외곽순환도로 중동 나들목에서의 화재사건들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시 포격 화재장면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 자체였다.

만약에 서울에서 포격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찌 될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여야 할 때다. 화재 가능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대응책이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할 것이다. 우선 건축물을 들여다보자.어느 건물치고 증축과 용도변경이 없는 건물이 있는지? 꽉꽉 막아놓은 비상통로는 설치 목적대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관리상태는 어떨까. 비상 대피소로 지정된 지하주차장은 과연 대피소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대피소에서의 안전은 어느 정도 확보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체류 가능한 대피시간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건축물 속의 전기와 가스시설은 필요한 용량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시설용량보다 훨씬 초과하는 부하를 걸어놓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스럽다.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실상은 염려하는 그 이상의 상황임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우리 현실이다.

건축자재는 화려하지만 내화 성능은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고성능 액체 소화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정책에서는 여전히 분말 소화기만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내화 성능의 실상은 화재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든다.

최근 국토해양부와 소방방재청은 '고층 건축물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소위 준초고층으로 분류되는 30~49층(높이 120~200m) 건물도 신축할 때는 중간층에 피난안전층을 설치하고 피난전용 승강기를 지정해 비상시에 피난안전층과 출구를 직통으로 연결해 운행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개선된 것이긴 하지만 염려는 여전하다. 피난안전층의 용도가 목적한 그대로 유지돼 본래 기능을 발휘해야 하지만 실상은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방방재청은 고층화재 진압을 수행할 초대형 굴절사다리차(약 70m)와 고성능 소방펌프차를 내년에 도입키로 예산을 확보했고 전국 4개 권역별로 물대포 형태로 공중에서 살수하는 중대형 헬기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적극적으로 개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대형 차량이 운행할 도로구조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이르면 해답이 없다. 아니면 이런 장비를 초고층 건물 전용으로 배치할 것인지,그렇다면 소방인력도 초고층 건물 중심으로 배치할 것인지 의문은 꼬리를 문다. 만약 그렇다면 국가 공공자원의 운용상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또 다른 논란거리만 낳게 될 것이다.

소방장비와 소방인력만이 화재피해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건축물 자체의 소방능력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그 건축물에 사는 주민의 소방능력도 함께 높여야 한다. 외부의 소방능력을 빌리는 것은 차선책이고 자체의 소방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축행정과 기술 그리고 소방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주민의 소방방재 능력도 더해져야 일류를 넘어 초일류가 될 수 있다. 건물 자체의 소방안전을 확보하는 방안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게 여럿 있다. 나아가 주민의 소방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도 가능한 것이 있다.

내력을 확보하는 것이 외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다. 초고층 건축물에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만큼의 소방안전관리 능력이 자체적으로 겸비될 때 자랑스러운 주민이 될 것이다. 그래야 공공자원의 사용에서 형평성 문제도 잠재울 수 있다.

조원철 <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