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개성공단은 인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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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철수 땐 南보다 北에 더 타격개성공단이 큰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남북 긴장관계가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자칫 우리 측 근무자들이 인질로 잡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의 남북 대립 과정에서 북한이 개성공단 육로 통행을 차단하겠다는 위협까지 가한 일도 있는 만큼 기우라고만은 보기 어렵다.
도발 계속하면 '폐쇄' 카드 꺼내야
남북 경협의 최대 성과물인 개성공단이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계륵같은 신세가 돼가고 있는 것은 정말 유감스런 일이다. 평화 통일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부풀었던 기대는 그저 기대였을 뿐 지금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다. 남북 긴장고조와 신변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한때 1000여명에 달했던 우리 측 근무자들이 지금은 300명 이하로 급감했다. 근무 인력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품질관리나 기업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세 불안에 따른 납품 차질을 우려해 발주선을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고객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설상가상인 셈이다.
하지만 개성공단의 그동안 성과는 작다고 보기 힘들다. 2005년 입주 당시 18개에 그쳤던 기업 숫자가 지금은 121개로 늘었고 북한 근로자 수도 7621명에서 4만4958명(10월 말 기준)으로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 생산액은 2억5649만달러에 이르렀고 지금까지 누계생산액은 10억달러를 넘어섰다. 누적 방문인원도 60만명에 육박한다. 숫자를 놓고 본다면 결코 실패작은 아니다.
양측이 얻은 이익도 적지 않다. 존립의 위기에 처했던 우리 노동집약적 경공업체들이 북한의 저임 노동력을 활용해 부활할 기회를 얻었다. 민간 교류를 통해 남북 국민들 간의 거리감이 줄어들고 우리의 경제력을 알릴 수 있었던 것도 성과다. 북한의 경우는 실질적 혜택이 크다. 무엇보다 4만5000명의 인력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직접적 수혜 인원만도 15만명 안팎에 이를 것이다. 달러 수입 또한 짭짤하다. 북한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이 90달러 정도라니 연간 4000만달러 이상이 유입된다는 계산이다. 외화벌이 수단이 마땅치 않은 북한 입장에선 큰 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익의 무게감에서는 남북간에 현격한 격차가 있다.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우리가 얻는 이익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지만 북한의 경우는 요긴하기 짝이 없다. 만일 공단이 폐쇄되고 우리 기업들이 모두 철수한다면 북한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당장 수만명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유일한 외화벌이 창구도 사라진다. 직 · 간접 파급효과까지 감안한다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일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개성공단을 완전 고립시키거나 근무자들을 인질로 잡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번이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공단이 폐쇄되는 운명에 처할 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생떼를 쓴다고 해봐야 유성진씨 사례처럼 체제비판 혐의를 씌워 억류하거나 일시적 통행 제한을 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개성공단은 오히려 우리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빅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유사 시 공단 폐쇄를 각오하고 대북관계에 임한다면 얼마든지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치 볼모를 잡힌 듯한 심정으로 주눅들 이유가 없다.
다만 우리 측 근무자들이 인질이 될 가능성 자체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남북긴장이 극도로 높아졌을 때 스스로 공단을 떠나는 기업에 대해서도 손실을 보전해 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남북경협보험은 보상 대상과 금액이 제한적이어서 기업들이 스스로 공단을 떠나기는 힘든 까닭이다. 인질화 가능성만 제거한다면 유사 시 공단폐쇄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고,우리가 그런 채비를 갖춰놓는 것만으로도 북한에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