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퍼트롤]"현대그룹 M&A 실패는 내부 제보 때문"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ㆍ합병(M&A)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현대그룹의 인수 우선협상자 자격을 박탈한 현대건설 채권단(주주협의회)은 22일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에 인수 자격을 주는 안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시장에선 이미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점치고 있다.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인수 양해각서(MOU)를 해지하면서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중재할 계획'이라고 밝혀 현대차그룹의 인수 가능성을 더 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최종 인수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현대그룹이 법원에 제기한 MOU 해지 금지 가처분 소송을 비롯해 채권단의 입찰규정 위반 논란, 현대차그룹간 명예훼손 소송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건설 인수전의 무대는 이제 법정으로 옮겨 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국내외 재무투자자(FI)와 전략적투자자(SI)들을 모두 동원해 전사적으로 뛰어든 이번 인수전에서 왜 실패한 것일까.이미 알려져 있는 대로 자산이 고작 30억원에 불과한 현대상선의 프랑스 법인이 1조2000억원이란 막대한 돈을 담보 없이 대출받았다는 의혹을 현대그룹이 풀어내지 못해서다. 이보다 앞선 문제는 프랑스 나타시스은행의 실체(단순한 투기자본)를 지적해 대출자금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현대증권(현대그룹 증권계열사) 노동조합이다.

현대증권 노조는 나타시스은행의 대출자금 규모에 대한 논란이 서서히 불고 있을 때 '나타시스은행 100% 자회사인 넥스젠캐피탈이 계약자'라고 밝혀 논란을 확산시켰다. 이들은 넥스젠캐피탈의 과거 투자 행적과 그 돈의 성격을 낱낱이 분석해 공개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는 이 넥스젠캐피탈의 실체를 어떤 경로를 통해 알아냈을까. 여지껏 시장에선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이 항상 현대그룹의 반대편에 서있는 현대증권 노조에 흘렸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민경윤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은 "노조가 현대건설 인수자금에 대한 최대 의혹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차그룹이 아닌 현대그룹 내부의 결정적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실토했다.

분명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M&A 실패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지루한 법정싸움의 결과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전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렇지만 현대그룹의 인수 MOU 해지를 불러온 결정적 단서의 시작이 외부가 아닌 바로 내부였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성문을 굳게 닫고 치열하게 싸워야 할 M&A 전쟁에서 성문 안쪽의 병사들이 스스로 문을 열어제친 것이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