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해진 월가 컴퓨터, 사설ㆍ트위터 읽으며 투자 분위기 파악

숫자만 분석하면 구식
뉴스 주제 해석해 주가 예측
미국 월가의 컴퓨터는 숫자에만 밝은 게 아니다. 이제는 뉴스를 분석해 시장 정서까지 읽어낼 정도로 발전했다.

22일 뉴욕타임스(NYT)는 트레이더들이 '똑똑한 컴퓨터'를 활용해 언론에 나온 뉴스와 사설은 물론 투자 대상 회사 웹사이트,블로거와 심지어 트위터 메시지까지 종합적으로 분석,주가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컴퓨터 거래 확산으로 인한 가격 변동성 등을 감안하면 이 같은 기술 발전이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끔찍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수년간에 걸쳐 진행된 기술 혁명에서 누가 앞서느냐에 따라 월가 금융회사의 성패가 좌우될 전망이다. 가장 똑똑하고 빠른 컴퓨터를 갖고 있는 트레이더가 경쟁자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생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IA벤처의 로저 에렌버그 파트너는 이 같은 기술 변화에 대해 "무기 경쟁과 같다"며 "똑똑한 컴퓨터는 트레이더들로 하여금 투자에 영향을 미칠 변수를 파악하고 해석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경제 통계와 뉴스,소셜 미디어를 통해 주고 받은 내용 등 정형화되지 않은 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의 정서를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해내느냐가 월가 금융사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정확한 시장 정서를 파악하기 위해선 새로운 언어에 기초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다우존스는 미 컬럼비아대,노트르담대와 함께 투자 심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3700개 단어를 컴퓨터 언어로 축적했다. 소프트웨어는 글의 주제에 따라 실제 단어들을 분석한다. 단순히 분석만 하는 게 아니라 전후관계까지 고려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테면 '매우 좋다'(terribly good)는 그 뜻을 정확히 판독할 수 있어야 한다. 'terribly'와 'good'을 따로 판독하는 다른 컴퓨터 프로그램과는 차이가 있다. 빈스 피오라먼티 알파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 정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톰슨로이터소프트웨어를 쓴다. 블룸버그는 뉴스와 트위터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 등을 추적한다. 만약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를 통해 IBM을 주제로 메시지를 보내면 고객에게 경계 신호를 보낸다.

매사추세츠주 엠허스트에 있는 텍스트 분석회사 렉살리틱스는 트위터 메시지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알고리즘에는 즐거운 표정과 행복하지 않을 때를 보여주는 이모티콘이 포함돼 있다. 이 컴퓨터를 활용한 시장 정서 분석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만 계량 분석에 의존해온 트레이더들이 정형화되지 않은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기법 활용이 확산되면 시장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5월 그리스 금융위기 사태가 악화되자 월가 컴퓨터들은 '깊은 수렁(abyss)'이 포함된 뉴스에 주목,일제히 매도 주문을 내기도 했다. 정보 분석 알고리즘 개발에 참여한 폴 테트록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같은 기술 발전이 초고속 트레이더들에게만 유리한 투자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며 당국의 감독강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알고리즘algorithm.주어진 문제를 풀기 위한 절차나 방법.컴퓨터 프로그램에서는 실행 명령어들의 순서를 의미한다. 아랍의 수학자인 이븐 무사 알 호레즈미에서 유래된 용어다.

◆ 이모티콘

emoticon. 사이버 공간에서 컴퓨터 자판의 문자 기호 숫자 등을 조합해 감정이나 의사를 나타내는 표현법.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