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아프리카 안 가겠다는 외교관

외교통상부가 어느 해보다 바쁜 연말을 맞고 있다. 북한의 도발과 관련한 유엔의 규탄,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4강 외교,중국 어선 침몰을 둘러싼 한 · 중 간 외교마찰 등 국익과 직결된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외교역량이 총체적으로 시험받고 있는 상황(외교부 관계자)"이라는 말이 과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적지 않은 외교관들의 눈과 귀가 현장으로 향하지 않고 엉뚱한 데로 가 있다고 한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연말 인사와 관련,"아직도 일부 직원이 외부인사를 동원해 인사청탁을 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지극히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외교부가 이달 초 재외공관장 인사안을 청와대에 올리자 좌천될 위기에 몰린 대상자들이 정치권 등을 통해 로비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인사잡음은 고위 간부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사석에서 "과장급들이 험지(險地)를 아무도 안 가려고 해서 내가 화를 많이 냈다. 외교부에서 크려면 이번에 반드시 아프리카를 한번 가야 한다고 충고했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한 과장급 직원의 변명은 이렇다. "솔직히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 직원이 누가 있겠느냐.치안이 불안해 외출도 맘대로 못하고,아이들 교육여건도 마땅치 않은 데서 3년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 그는 "지난 수십년간 험지 공관은 '물먹는' 인사로 간주돼 왔다"고 털어놨다. 오지로 가는 외교관들의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던 이유다.

또 다른 과장은 "험지에서 근무할 각오가 돼 있다. 다만 공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수차례 험지 공관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냉 · 온탕' 순환 인사원칙을 지키겠다고 천명했지만,아직 젊은 외교관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사는 공평하지 않고,정실과 로비가 통한다"는 인식이 그만큼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험지를 싫어하는 외교관을 야단만 칠 게 아니라 이들이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원칙과 비전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이게 안 되면 등 떠밀려 아프리카로 간 외교관들은 3년간 달력만 바라보다 빈손으로 올 것이다.

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