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경제 흔드는 국영기업] 최대 조선사 '비나신' 결국 디폴트 선언…경제위기 '뇌관' 되나
입력
수정
글로벌 워치
국영기업이 GDP 35% 차지…흑자 내는 기업은 절반도 안돼
비나신 디폴트는 시작에 불과…대출 쏟아부은 금융권 확산 예고
무역적자·인플레도 경제 발목
베트남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 베트남 최대 국영 조선업체인 비나신 채무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국가 신용등급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4일 베트남의 국가 신용등급을 'BB'에서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수준인 'BB-'로 1단계 강등했다. 앞서 무디스도 지난 15일 베트남의 신용등급을 'B1'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국가 부도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3.1%로,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경쟁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과의 프리미엄 격차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베트남 내부에서도 "아시아의 호랑이에서 잠자는(hibernated) 고양이로 추락했다"(베트남넷브리지)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0년 동안 평균 7%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로,아시아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내실없는 성장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베트남 경제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비나신을 비롯한 부실 국영기업의 뇌관이 결국 터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톱10 기업 중 8곳이 국영기업
베트남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1990년 1만3000개에 달했던 국영기업은 민영화를 거치면서 지난해 1200개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베트남 전체 GDP에서 국영기업 자산은 35%를 차지한다. 한국을 비롯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3%다. 지난달 발표된 베트남판 우수기업 리스트인 'VNR 500대 기업'에서 톱10 중 8곳을 국영기업이 차지했다. 상위 5개 업체는 모두 국영기업이다. 전체 500대 기업 중에서도 국영기업 비율은 46%에 이른다.
문제는 국영기업들의 경영상태가 방만하고 부실하다는 점이다. 흑자를 내는 국영기업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베트남 최대 기업인 페트로베트남과 최대 통신업체인 모비폰 등을 제외하면 우량 국영기업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영기업들은 채권을 발행할 때 그동안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줬기 때문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2005년 정부가 국영기업 채권에 지급보증을 하지 않으면서부터 이들 기업의 채무위기가 불거진 점도 이 때문이다. 홍콩의 아시아타임즈는 투자 대비 효율성을 측정하는 한계고정자본계수(ICOR · incremental capital output ratio)에서 베트남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뒤처지는 것도 국영기업의 비효율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의 ICOR 계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 평균(2~3)을 훨씬 웃도는 5에 육박한다. 이 계수가 높을수록 자본의 생산효과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 1을 달성하는데 투자요소는 5배가 필요할 정도로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다. ◆금융권 파급 확산 우려
비나신은 24일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으로부터 빌린 6억달러 중 1차분인 6000만달러의 채무를 상환하는데 실패하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그러나 비나신의 디폴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비나신의 채무는 총 44억달러로,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수치 역시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실제로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비나신 부채 위기가 해결되더라도 다른 국영기업들의 부실이 도미노처럼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지난 9월 비나신의 자회사를 인수한 페트로베트남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베트남에서 가장 재정건전성이 좋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비나신의 부실한 자회사를 떠맡을 경우 재정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5위 기업인 베트남석탄공사(비나코민)의 부실 가능성도 흘러 나온다. 곳곳에서 불거지는 국영기업의 부실은 베트남 금융권의 부실로 바로 이어질수 있다. 국영기업에 대한 대출 규모는 은행 전체 대출에서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돼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베트남 은행들은 전체 GDP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90억달러를 국영기업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쏟아부었다. 정부가 나서서 국영기업 대출 이자율을 4%포인트로 낮추라며 대출 확산을 부추겼다. 국영기업 부실이 베트남 금융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디스도 지난 15일 "부실 국영기업에 대한 대출 회수가 우려된다"며 베트남 투자개발은행(BIDV)을 비롯한 6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피치 역시 지난 9월 베트남 최대 국영은행인 비에트콤뱅크와 최대 민영은행인 아시아상업은행(ACB)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악화되는 국가경제베트남 경제의 핵심인 국영기업이 흔들리면서 국가 경제도 악화하고 있다. 베트남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다. 지난해 72억달러로 전체 GDP의 7.4% 수준이던 무역적자 규모는 올해 130억달러까지 늘어나 11.2%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외환보유액도 급감했다. 2008년 242억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168억달러까지 줄었다.
금융위기 후 시행한 과도한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수지도 악화됐다. 2008년 이후 정부가 실시한 개인 · 법인소득세 감면과 기업 대출이자 보조금 조치 등의 부양 정책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는 데 일조했지만 대신 재정적자 규모를 눈덩이처럼 불렸다. 2007년 GDP 대비 4.7%였던 재정적자는 지난해 8.7%까지 급증했다.
인플레이션도 고민거리다.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난 8월 자국 통화인 동화를 달러당 기존 1만8544동에서 1만8932동으로 2.1% 평가절하했다. 지난해 11월 이후에만 세 번째다. 미국 투자회사 모건스탠리는 고(高)물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내년 초 또 다시 동화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절하 조치가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트남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하반기 2~4%에서 지난달 11.1%로 급등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올해 베트남의 CPI 상승률이 11.5%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