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넓히는 국부펀드] "돈 될 만한 곳은 중국에 다 뺏겨"…인도·일본도 國富펀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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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 걸린 아시아 국가
中 가격불문 입찰 참여 … 에너지·자원분야 독식
10여개국 국부펀드 설립 … 중국에 반격 채비 서둘러
중국 국부펀드의 부상에 가장 긴장하는 곳은 일본이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 분쟁에서 중국의 기를 꺾지 못한 데다 경제력 규모에서도 조만간 추월당할 처지다.
여기에다 중국이 중국투자공사(CIC)를 필두로 전 세계 자원시장을 선점하자 아시아 맹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최근 집권 민주당을 중심으로 국부펀드 설립 주장이 제기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인도 대만 등도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 중이다. ◆반격에 나서는 일본 인도
일본 내각과 민주당은 지난 10월 발표한 5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국부펀드 조성을 포함시켰다. 국부펀드가 설립되면 주요 7개국(G7)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세계 2위 달러 보유국인 만큼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의 국부펀드 설립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말에도 자민당 내에서 거론됐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충격으로 휘청거린 씨티그룹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당시엔 "정부 자산을 위험 자산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재무성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우희성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세계 자원 확보전에서 공격적으로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지 않으면 영원히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절박감이 일본 내에 형성돼 있다"며 "설립 작업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브릭스(BRICs) 국가 중 유일하게 국부펀드가 없는 인도도 해외 자원 개발에서 매번 중국에 밀리자 국부펀드 설립을 적극 추진 중이다. 대만도 싱가포르 테마섹 같은 국부펀드를 모델로 삼아 신규 국부펀드 설립 방안을 짜고 있다.
이 밖에 태국 인도네시아는 물론 방글라데시 앙골라 볼리비아 나이지리아 등도 새로운 국부펀드 설립 논의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 우 연구원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외환보유액의 운용을 다각화하고 중국의 영토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국부펀드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며 "최근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 중인 나라는 10여곳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견제 쉽지 않을 듯
하지만 중국 국부펀드를 견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중국이 워낙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올초 캐나다 에너지 기업인 '싱크루드' 인수를 둘러싼 세계 국부펀드 간 경쟁이 단적인 예다. 당시 인수전에는 CIC를 비롯해 한국투자공사(KIC) 등 유수의 국부펀드들이 대거 참여했다.
KIC는 향후 유가 전망을 놓고 시나리오별로 목표 수익률을 계산한 후 얼마의 가격을 써낼 것인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하지만 게임은 싱겁게 끝났다. CIC가 예상 가격에 무려 32%의 프리미엄을 붙인 46억달러를 제시해 단독으로 인수 대상자로 선정됐다. KIC 관계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어서 모든 국부펀드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라며 "중국은 매번 경쟁이 붙을 때마다 가격 불문하고 뛰어들기 때문에 딜을 거의 독차지한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헤지 투자가 대세
국부펀드들의 최근 투자에서 가장 큰 특징은 인플레이션 헤지(물가 상승 위험을 피하는 것)다. 우 연구원은 "선진 각국의 양적 완화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 증가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이를 회피하기 위한 자산 투자 쪽으로 몰리고 있다"며 "부동산은 물론 석탄 전력 항만 에너지 등 실물자산으로 투자 대상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세계 3위 규모의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올 3월 투자 규정을 바꿔 채권 투자 비중을 5%가량 줄이는 대신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후 영국 런던의 크라운부동산회사 지분 25%를 인수했다. 1990년 설립 후 첫 부동산 투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등에 대한 직접 지분투자에서 대규모 손실을 보면서 최근에는 직접투자보다는 사모투자펀드(PEF) 등을 통한 간접투자로 돌아서는 것도 큰 트렌드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