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70% 복지 늘리려 상위 30%에 세금 더 걷는 건 포퓰리즘"

● 전경련 시장경제大賞 받은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누진세·부유세 구분해야
툭하면 나오는 부유세 도입 주장 … '부자는 나쁘다'는 전제 깔린 것

'선택적 복지'가 해답
보편적 복지는 4대보험으로 충분 … 빈곤층 대상 복지 대폭 강화해야

"한나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전 국민의 70% 복지론'은 시장경제와 어울리지 않는 포퓰리즘적인 주장입니다. "

한국의 대표적 '시장경제 전도사'로 꼽히는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보편적 복지는 건강보험 ·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의 범위에 머물도록 하고 나머지는 선택적 복지,특히 빈곤층에 집중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걷어 복지 재원으로 삼자는 주장은 '부자는 나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라며 "자기 힘으로 살기 어려운 사람을 집중적으로 도와줄 순 있지만,국민 70%를 복지 수혜자로 삼는 것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시장발전과 경제개발(서울대 출판문화원 발간)'을 출간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제21회 시장경제대상'을 수상한 이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난 여름 정년퇴직한 뒤 2학기에는 한국 경제에 대한 영어 강의를 했습니다. 내년 1학기에는 퇴임 전에 하던 대로 미시경제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평소에는 피곤하면 자고,안 그럴 때는 글을 씁니다.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니까,자꾸 쓴다는 게 중요합니다. 교수가 된 제자들도 종종 만나고요. 그렇지만 주로 대화하는 상대는 역시 애 엄마예요. 뭐든 아내에게 물어보면 '아,몰라 몰라' 하면서 말을 해 주는데 그 안에 중요한 단서가 들어 있거든요. "▼어떤 단서들인가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옛날엔 저녁에 채소를 먹으려면 뒤뜰 텃밭에서 무 배추 상추를 뽑아왔습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꽁보리밥에 무국을 먹었죠.그런데 요즘 아내가 시장에 채소를 사러 갔다 오면 뭐가 이렇게 비싸냐고 툴툴거리고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삼겹살을 구워먹습니다. 집 뒤꼍에서 채소를 길러 먹는 것에 비해 요즘 밥상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시장 덕분이죠.그렇지만 사람들은 정작 시장을 이용할 때 값이 비싸다,약육강식이다,내가 당한다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파는 쪽이라고 불만이 없겠습니까. 물론 횡포도 있겠지만….그러나 그것에 가려 시장의 편리함,장점을 보지 못하면 안되죠."

▼현 정부가 들어선 지 3년이 됐습니다. 시장이 어느 정도 발전했다고 보십니까. "좀 유감입니다. 시장을 상당히 발전시키리라고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 친(親)시장이 아니라 친기업이라고 해서 고개를 갸웃했는데….이 정부는 친시장과 친기업을 같은 것으로 본 것 같습니다. 기업은 시장에서 활동하는 하나의 주체이지 그 자체가 시장은 아닙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친서민이 이슈로 등장했지 않습니까. 그 본질은 반(反)시장입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표적인 반시장 · 친서민 정책이 동반성장 정책입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 대기업이 못 들어가게 한 것은 옛날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물건을 잘 만들었으리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보내는 이런 신호가 먹혀들어가는 것이 올바른 시장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어려워졌다는 말도 많습니다.

"과거 수출품을 생산할 때 경쟁력을 높이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수직계열화했습니다. 하도급 체계가 질서를 갖추게 됐습니다. 그 결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목을 매게 됐습니다. 대기업-중소기업 관계 문제는 하도급이 문제이지 시장에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정부가 해야 할 일(하도급 문제 개선)은 하지 않고,하지 말아야 할 일(시장 개입)은 하고 있습니다. "

▼하도급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하도급 기업을 과도하게 압박한 대가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엄청난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면 대기업들도 '함부로 하다가는 내가 되게 당하는구나'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늘었습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금융이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금융혁신이라면서 과거에는 금융회사에서 돈을 공급받을 수 없던 영역까지 파이낸싱이 됐습니다. 금융의 기적이 일어났다면서 '어떻게 돈을 빌려줄까'만 고민했습니다. 돈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걸러내는 기능을 상실했던 겁니다. 좀 나쁘게 말하면 선량하게 저축한 사람들의 돈을, 시장 참가자들이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해 사기를 쳐서 빼앗아 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경우 과거엔 주요 임원들이 회사의 지분을 갖는 파트너제였는데,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주식회사로 바뀌면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속이는 행위가 횡행하는 것은 도떼기시장이고 정상 시장이 아닙니다. 속임수가 잘 걸러지도록 하는 게 시장의 발전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성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비타민제를 비싼 값에 사먹는 것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통제가 잘 작동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시장에 대한 비판과 함께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습니다. 복지 예산이 과도하다는 걱정과,아직 우리의 복지 수준이 갈 길이 멀다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일단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합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복지도 늘어야죠.다만 보편적 복지는 4대 보험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하고,나머지는 선택적 복지를 해야 합니다. 빈곤층에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고,중산층에까지 복지를 늘리면 안된다고 봅니다. 나도 65세 이상 노인에게 발급되는 대중교통 무료이용권인 시니어패스를 쓰고 있습니다. 아내가 왜 안 쓰냐고 혼내서 쓰고 있는데,그 비용은 우리 자녀들이 통학 · 통근하며 낸 돈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런 얘길 하면 내가 남들보다 소득세 · 재산세를 더 내니까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난센스죠.이런 혜택을 받기보다는 내가 낼 세금을 깎아주는 게 먼저죠."

▼늘어나는 복지 재원을 감당할 방법도 고민입니다.

"돈이 없으면 부유세를 걷자고 하는데 그런 것을 시장경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누진세와 부유세는 다릅니다. 누진세는 담세 능력이 있는 쪽이 세금을 더 내는 것입니다. 반면 부유세는 70%에게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해 상위 30%가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부자는 나쁜 놈들'이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기를 끄는 물건을 만들어 부자가 됐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죠.사회가 인정한 소득이니까요. "

▼새해 정부에서 해야 할 역점 사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지 이슈를 잘 다뤄야 합니다. 복지는 한번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으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없애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퇴직을 바랍니다. 아무 일을 안 해도 현직 때의 80~90% 급여를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4대강 예산을 돌리면 복지 재원이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4대강 예산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복지 지출은 영구적이죠.대신 빈곤층 대상 교육 지원을 대폭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 어떤 분야를 연구하시렵니까.

"경제학에서 보는 시장은 증권시장에서 장내 시장과 같은 개념입니다. 거래가 표준화돼 있고 익명성을 바탕으로 움직이죠.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부분 수요자와 공급자가 1 대 1로 만나서 다른 사람은 모르는 사이에 거래를 합니다. 장외거래와 비슷한 비(非)시장 거래입니다. 이런 건 수요 · 공급이라기보다는 바기닝(bargaining,협상 · 흥정)입니다. 겉으로 거래 상황이 노출되지 않으니 불공정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정당한 바기닝인가 이 부분을 계속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대담=고광철 논설위원 gwang@hankyung.com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