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블랙 컨슈머

2005년 미국 오하이오주 웬디스 햄버거 가게의 칠리요리에서 손가락이 나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관련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추적조사를 해보니 애나 아얄라란 여성이 보상금을 노리고 벌인 사기극임이 드러났다. 문제의 손가락은 애나의 남편과 함께 일하던 노동자의 것이었다. 우연한 사고로 잘린 손가락을 요리에 집어 넣은 후 웬디스로부터 100만달러를 받아내려는 속셈이었다.

국내에서는 2008년 '지렁이 단팥빵' 사건이 발생했다. 50대 남성이 광주의 한 편의점에서 산 빵에 지렁이가 들어있다고 제조업체에 연락해 5000만원을 요구하다 들통이 났다. 법원은 피의자가 술에 취해 있던 데다 미수에 그친 점 등을 들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블랙 컨슈머의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블랙 컨슈머는 각종 제품에 대한 피해 보상을 노려 업체를 협박하거나 상습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식품이 변질됐거나 이물질이 들어갔다면서 업체에 보상을 요구하는 게 가장 흔하다. 구입한 의류를 몇 차례 입은 후 옷에 하자가 있다며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 공개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업체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협상'에 응한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문제는 누구 잘못인지를 딱 부러지게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제조과정에서 아무리 꼼꼼하게 챙겨도 제품 불량이나 이물질을 모두 걸러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돈이나 물건으로 회유해 잘못을 슬쩍 덮어버리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블랙 컨슈머들이 갈수록 활개를 치고 있다. 300여 기업중 소비자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경험한 곳이 87.1%에 이른다는 조사(2008년 대한상공회의소)도 있다. 부당 요구 유형은 과도한 보상(53.7%),규정에 없는 환불 · 교체(32.4%),보증기한 후의 무상수리(13.9%) 등의 순으로 많았다.

이번엔 대형 제빵업체 매장의 식빵에서 쥐가 나왔다는 글과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파문이 일고 있다. 경쟁 빵집의 자작극인지 정당한 소비자 고발인지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가 국과수에 정밀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꺼림칙함이 한동안 남아 있을 게다. 그렇지않아도 구제역 확산으로 어수선한 판에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만 더 커지게 생겼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