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몰라…후보 몰라…'깜깜이 재외국민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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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교포 4000명 설문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도입되는 재외국민 선거제도가 심각한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권자가 230만명에 달해 선거 승패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출마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은 데다 투표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한글을 잘 몰라 투표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특히 재외국민 표를 겨냥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선심성 표심잡기 경쟁으로 교포사회가 분열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권자 230만명…부작용 클 듯
한국경제신문이 27일 단독 입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의 재외국민 선거 설문조사(교포 및 선거 관리자 3998명 대상) 보고서'에 따르면 재외국민의 46.9%가 '후보자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절반 가까이가 투표 전에 출마 후보자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교포 2 · 3세를 중심으로 '한글을 잘 몰라 투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도 21.6%에 달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 분들이 선거를 하려면 정치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사는 국민도 선관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선거정보를 얻는 경우가 얼마나 되느냐"며 "재외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선거 공보물과 투표용지 등을 한글과 영어 두 가지로 제작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소 방문시 어려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59.1%에 달하는 응답자가 거리가 너무 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웠다고 답해 영토가 넓은 국가의 투표 유도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미국은 모의투표에서 20%,호주는 10%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거리상의 이유로 참정권이 침해받는다면 투표의 공정성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공정한 선거관리와 함께 교포사회의 편가르기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모의선거에 참여한 선관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재외국민 선거의 최대 문제점으로 '정치적 중립성 및 공정성 확보'라고 답한 비율이 26.9%로 1위를 차지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재외국민 선거의 주 대상자인 영주권이 있거나 영주권 없이 오랜 기간 외국에 체류하는 집단이 정치적 성향이 가장 강하다"며 "이 사람들이 유학생이나 상사 주재원 등의 편을 갈라 국내 정치에 깊숙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도 "재외국민 선거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 교포사회에서는 '누가 어느 당 공천을 받을 것이다''누구는 한국의 유력 정치인과 친분이 두텁다' 등의 소문이 퍼지면서 줄서기가 한창"이라고 전했다.
구동회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