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선거 '깜깜이 투표' 우려] 무관심ㆍ무지ㆍ무법 '3無 선거' 가능성…시기상조론 대두
입력
수정
大選 수십만표 차이 당락 결정
유권자 230만명 '태풍의 눈'
철저한 준비없이 강행땐 줄세우기 등 교포사회 상처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재외국민 설문조사는 재외국민선거가 자칫 선거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출마 후보도 인지하지 못한 채 투표를 하는 '깜깜이 투표'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수십만표 차로 당락이 결정된 사례가 여러 차례였다. 재외국민의 30% 정도만 투표에 참여하면 박빙선거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권자 30%는 존재 여부조차 몰라
재외국민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은 위험 수준이었다. 선거에 참가한 유권자 중 약 30%가 재외선거제도의 존재 여부조차 몰랐으며 이번 모의선거를 통해 알게 됐다고 응답했다. 선거에 참여한 공관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모의선거인 모집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는 문항에 59.7%의 응답자가 '재외국민들의 무관심'을 꼽았다.
막상 선거에 참여하고 싶어도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정도는 후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곧 후보의 지지가 아닌 정당이나 기호만 보고 투표하는 '묻지마 투표' 가능성을 예고한다. 신율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재외국민들의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자칫 교포사회 내에서 국내 정치인들과 끈이 닿아있는 정치꾼들에 의한 동원 투표가 발생해 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일부 정치꾼들의 표 동원 가능성은 불법선거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어떠한 선거법 위반 행위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냐'는 질문에 39.7%의 유권자가 '금품 또는 음식물 제공'이라고 답해 금권선거로 첫 재외국민선거가 얼룩질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교포사회에서는 각종 행사를 빙자해 사전선거운동을 의심케 하는 모임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재외국민선거의 특성상 높은 투표율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선거관리 측면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재외선거 상당수 반대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도 재외국민선거가 준비부족 등의 이유로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다. 권형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재외국민선거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투표소와 거리가 먼 유권자에 대한 참정권 보장 등의 문제는 사실상 해결책이 없다"며 "재외선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각 나라의 특성에 따라 투표소 설치,투표용지 배송,선거인단의 정확한 신원 확보 등에서 투표의 기술적인 어려움이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납세의 의무에서 배제된 재외국민들의 권리를 말하기에 앞서 국내에 5년 이상 장기간 체류하면서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외국인 국내체류자의 참정권 문제를 다루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중국같이 선거가 없는 나라의 경우 우리 재외국민들이 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외교적 갈등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며 "외교통상부가 사전에 재외국민선거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번역해 대사관을 통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오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우리 재외국민들의 선거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전 교수는 "해외 공관에 대한 관리 자체도 엉성한 마당에 선거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법선거에 국내 수준의 감시체계를 운용할 수 있겠느냐"며 "철저한 준비 없이 재외국민선거가 강행된다면 교포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주고,낮은 투표율 등의 이유로 재외국민선거가 존폐의 기로에 놓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동회 기자 kugija@hankyung.com■ 재외국민선거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 중 만 19세 이상의 외국 영주권자나,선거기간 중 일시적으로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유학생 등 재외국민에게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의 투표권을 주는 제도다. 투표권을 갖는 재외국민은 230만명으로 추정된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 때 처음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