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잘못된 길로 가는 중국

자국이익 걸린 사안은 타협불허
對中 외교 '정치논리 덫' 조심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도를 넘었다. 지난 18일 발생한 중국어선 침몰과 관련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에는 '한국이 책임자를 처벌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했고,23일에는 '한국이 여러 차례 유감을 표명했으며,한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또 뜬금없이 '북한은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가지며,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 감시단을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의 초점이 북한의 핵개발에 있지 않고 감시단 수용 여부에 있다는 투의 혼란스러운 표현이다. 중국의 관영 매체는 이번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불법조업으로 어선이 침몰했으며 이를 떠들어 봐야 유리할 것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 정부 역시 더이상 외교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25일 서둘러 중국 선원들을 석방했다. 자국 어선의 불법행위를 인지하고도 한국 측 책임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중국 정부의 언사는 무엇 때문일까. 중국의 자세는 마치 사건 처리에 비협조적이면 북한 핵 문제를 한국에 불리하게 끌고 갈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느껴진다.

필자가 최근 중국 베이징의 한 세미나에서 접한 중국 학자의 발언이 떠오른다. 그는 남중국해 영해 분쟁 등 주요 현안이 중국의 '핵심 이익'에 속하기 때문에 결코 타협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의 국익에 중요한 사안은 힘을 앞세워 뜻대로 하겠다는 말이다. 또 국익 이외에 중국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생각해 본 적 없다"며 얼버무렸다. 경제대국인 중국의 한계다.

중국은 남북한 문제를 두 가지 전략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첫째 남북한을 중국이 시비를 가릴 권한을 지닌 한 수 아래의 분쟁 당사자로 본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한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고 되풀이했다. 이는 남북한 관계를 중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오만함이 묻어 있는 표현이다. 둘째 한반도 현안을 미국에 대한 전략적 대응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 · 미 갈등 관계에 대해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는 중국은 북한의 공격 행위와 핵개발에 대한 우려보다는 이를 이용해 미국에 대한 전략적 대립각을 세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둔다.

전후 폐허에서 반세기 만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을 권력세습 속에 북한 주민을 기아에 빠뜨린 북한 정권과 비교하면서 '편들지 않겠다'는 무모함을 보이는 것은 '힘의 늪'에 빠진 중국의 딜레마다. 늪에 빠진 사람이 힘만 쓸 경우 헤어나기 힘들어지고 빠져나오기위해 힘을 더 쓸 수밖에 없다. 보편적 가치보다는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힘,국제질서를 미국과의 갈등구조로만 파악한 나머지 북한의 무모한 도발과 핵 개발에 눈 감는 것은 결국 중국을 '힘의 늪'에 더욱 빠져들게 할 것이다.

중국어선 불법조업 사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접근 방식은 국제법보다 힘이 우선이라는 왜곡된 심리의 표출이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고,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 중국이 힘만 앞세우는 것은 인류의 불행이다. 신흥대국 중국이 국내외에 산적한 문제를 힘의 논리로 풀고자 한다면,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이 보여준 성장 신화는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번 중국어선 사건의 경우 '객관적 조사결과에 따른 송환'이라는 외교통상부의 해명이 있었지만,행여 중국의 압박전략에 말려든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정치논리를 내세워 정당한 법적 절차를 포기한다면,이후 중국 어선의 횡포가 극심해 질 것이 뻔하다. 이웃 중국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돕는 결과가 돼서는 곤란하다.

오승렬 < 한국외대 교수·중국학 /중국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