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局 앞두곤 화장 않고 승부에 집중"
입력
수정
아시안게임 2관왕 … '바둑얼짱' 이슬아 프로2단"대학 진학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1등 할 자신 없으면 다른 데는 눈 돌리지 않습니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성과도 그런 마음가짐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열린 '2010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여자기사상을 받은 이슬아 2단(19 · 사진).그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결단식 때부터 '바둑얼짱'으로 주목받았다. 광저우에서는 혼성페어와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실력도 '짱'임을 보여줬다. 그 공로로 이날 초단에서 2단으로 특별 승단도 했다. 아직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그를 28일 만나 신세대 바둑기사의 프로근성을 들어봤다. 올해 2월 서울 세명컴퓨터고를 졸업한 이 2단은 지난해 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처음엔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싶었지만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내면서 스스로 깨달은 게 있어요. 간절한 염원을 갖고 열심히 하면 내 나름대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그가 바둑에 '올인'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배경이다.
이 2단은 고향 여수에서 작은 건설회사에 다니는,아마바둑 3급 정도의 실력인 아버지를 통해 바둑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입문했지만 불과 2년도 안 돼 서울의 전국규모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기량이 늘었다. 5학년 때 허장회 9단 도장 문하로 들어가면서 아예 서울로 바둑유학을 떠났다. 이후 고1 때인 2007년 당당히 프로에 입단했다.
허장회 도장에서는 바둑공부뿐만 아니라 '공인'인 프로기사로서 지녀야 할 배려심도 배웠다. "당시 한 달 학원비 50만원을 제때 내지 못할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허 사범께서 입단 가능성이 충분하니까 걱정 말고 다니라며 격려해 주신 게 큰 힘이 됐습니다. 나중에 학원비가 800만원까지 밀렸는데 프로기사가 된 뒤 제일 먼저 갚았죠."청순한 외모와는 달리 반상에서의 이 2단은 여성 기사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전투바둑을 구사한다. 하지만 이번 광저우대회 전까지만 해도 그의 국내 성적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하는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에서 3연속 본선 진출한 것을 비롯해 STX배 여류명인전,지지옥션배 등의 대회에서 본선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지난해 12월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국가대표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폭발적인 집중력을 보이면서 기력이 일취월장,올 7월 대표 선발전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9월엔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에서 서봉수 · 백성호 · 김수장 9단 등 막강한 선배들을 연파해 주위를 놀라게 하더니 이어 광저우에서 대망의 금메달 두 개를 목에 걸었다. 그는 이 모든 변화를 불과 1년여 만에 이뤄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목표가 정해지면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하는 승부사 기질이 발동한 결과"라고 한다. "시합이 있을 때는 화장을 안하는 습관이 있어요. 아는 사람도 안 만납니다. 왠지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데이비드 소로의 수필집 《월든》이나 법정스님의 《서있는 사람들》 같은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는 것도 제가 집중력을 키우는 비결입니다. "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