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40년 미공개 社史] (下) D社 구매담당자 면전에서 도면 찢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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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사장들의 '굴욕'"우린 12.1인치는 필요없다니까요. "
1995년 어느 날.미국 PC업체인 D사의 구매담당 사무실에서 고성이 일었다. 순간 이상완 당시 삼성전자 LCD(액정표시장치)사업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D사의 구매담당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삼성이 내민 삼성전자의 12.1인치 도면을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세계 대부분 업체도 그렇고 자신들도 11.3인치인데 삼성이 12.1인치 도면을 갖고 오니 심통이 난 것.
삼성의 생각은 후발 주자로서의 차별화였다. 늦게 디스플레이 시장에 뛰어든 만큼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12.1인치 노트북용 LCD를 선택했다. 이상완은 찢겨진 도면을 앞에 두고 "그래도 우리는 12.1인치로 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왔다.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세계 노트북 1위인 도시바가 "11.3인치는 작으니 12.1인치 노트북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도시바가 삼성 패널을 사용해 12.1인치 노트북을 시장에 내놓은 지 얼마 뒤 D사의 구매담당 최고책임자인 존 메딕으로부터 직접 만나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삼성전자는 D사에 12.1인치 LCD를 납품하며 1998년 세계 LCD 시장 1위에 올랐다. 1997년 시스템LSI사업부 첫 수장 자리에 앉은 진대제 당시 부사장은 판로를 뚫기 위해 N사를 찾아갔다. 구매 담당 부사장은 싸늘하게 "서로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일언지하에 납품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부문을 버리지 않았다. 그 결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부문은 1위를 달리고 있고 디지털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징센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고 있다.
김현예 기자 hy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