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아침] '조심스러운 낙관'으로 맞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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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은 노력할 이유·의욕 줄여 … 자유의지 키울 때 더 잘살게 돼어느 해나 연말에 돌아보면,다사다단(多事多端)이란 말이 먼저 떠오른다. 지난해도 예외가 아니어서,나라 안팎의 크고 복잡한 사건들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도,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이전보다 훨씬 심각해졌다. 궁지로 몰린 북한 정권이 저지른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쩍 높였다. 북한의 공격보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것은 한반도의 위기에 대한 중국의 태도다. 북한의 무도한 공격들에도 불구하고,중국은 북한을 감싸기 바빴고 우리에 대해선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이 무너지는 북한 정권을 떠받쳐 왔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지닌 유일한 강대국이므로,중국의 그런 태도는 사태를 직접적으로 악화시킨다.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그런 태도를 바꿀 가능성도 없다.
이런 사정 아래엔 중국의 힘이 빠르게 커진다는 근본적 상황이 있다. 이제 중국은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고 다른 나라들을 윽박지를 만큼 커졌다. 중국의 힘이 커지면,이웃인 우리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따라서 커질 것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에 중국 시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정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더욱 비대칭적으로 만들 터이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 불리는 이런 과정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검색하는 우리 경찰관들을 폭행한 중국 선원들을 우리 정부가 기소도 하지 않고 풀어준 사건은 이 점을 괴롭게 보여준다. 그러나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새해의 첫 아침엔 특히 그렇다. 낙관적 전망을 지니는 편이 살아가는 데 훨씬 낫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면,열심히 노력할 이유와 의욕이 함께 줄어든다. 낙관적 전망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행위들이 뜻을 지니도록 애쓴다. 그런 차이는 결국 운명의 차이로 이어진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으므로,우리는 당연히 미래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낙관'은 생명체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태도다. 그런 태도는 환경에 적응적이어서,그것을 지닌 개체들은 잘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정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과 비슷하다.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는 철학자들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자유의지를 믿는 편이 낫다. 자신이 자유로운 의지를 지녔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잘살 터이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믿는 것은 적응적이다. 실제로는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과 낙관적 태도 사이엔 긴밀한 관계가 있다. 자유의지를 믿고 좋은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앞날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낙관적 마음으로 돌아보면,우리는 밝은 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무도한 공격으로 우리 군인들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지만,우리는 북한 정권의 사악함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들에게 맞설 의지를 다졌다. 특히 흐뭇한 것은,해병대가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고 가장 위험한 수색병과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민들이 이제는 핀란드화의 위험을 잘 알게 되었으므로,중국 문제도 보다 나은 대책을 마련할 바탕이 마련되었다.
지난해에 우리가 이룬 것들도 알차다. 우리 경제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실은 세계 경제도 비관적 전망보다 훨씬 나았다. 가을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이어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성적을 올렸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해를 뿌듯한 성취감으로 돌아볼 권리가 있다. 그리고 새해를 조심스러운 낙관으로 바라볼 근거가 있다.
복거일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