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구제역 사태 책임 '성역' 없어야

구제역이 전국으로 번졌다. 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이제 차단 방역이나 백신 접종 등 방역당국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살(殺)처분 매몰 비용만 사상 최대인 5000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구제역은 아직까지도 정확한 발생 원인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처음 책임 추궁을 당한 곳은 정부였다. 안동에서 구제역으로 의심 신고된 한우 15마리가 전국으로 유통되는 것을 방치하는 등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처음에는 차단 방역에 주력했지만,구제역을 막지 못하자 '최후의 카드'인 백신 접종에 나섰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장기간 포기하는 선택이었다. 구제역이 발생하고 확산되기까지 축산농가의 잘못은 없었는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했다. 최초 발생지인 안동 축산농가 관계자가 구제역이 만연한 동남아 지역을 다녀온 뒤 소독 · 검역은커녕 신고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국을 방문한 축산농장 관계자 2만3000여명 가운데 자발적으로 입국 신고를 하고 검역을 받은 사람은 1만4000여명에 불과했다. 구제역에 걸려 살처분되더라도 시가로 보상해주는 현행 축산농가 지원 체계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이 문제를 제기하자 비난이 쏟아졌다. "축산농가의 상황을 얼마나 알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사실을 왜곡하지 마세요. " "마치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북에서 한 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세력하고 동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

구제역 확산에 축산농가의 안전불감증이 일조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자식처럼 키운 가축들을 피눈물로 떠나보내는 축산농가들의 아픔을 알기나 하느냐"는 비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구제역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축산농가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혹한에도 밤낮없이 차단 방역을 하는 축산농가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뼈아픈 자성으로 구제역의 확산과 피해를 막는 것이 아닐까. 자성에 '성역(聖域)'을 둔다면 그 피해는 결국 축산농가에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서욱진 경제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