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파이팅] (3) "중이온가속기 세워 '과학한국' 토대 놓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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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핵물리학자 홍승우 성균관대 교수"잔디구장 없이 월드컵 4강 신화가 가능했을까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설 중이온가속기는 과학자들이 마음껏 뛰놀며 세계적 능력을 키울 과학잔디구장입니다. 우리나라가 기초과학 4강에 도전하는 데 발판이 될 것입니다. "
과학비즈니스벨트 내 들어설 거대기초과학시설 '한국형중이온가속기(KoRIA)' 설계 책임자인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52)는 3일 "올해는 '생애 가장 특별한 해'가 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2년 동안 표류하던 과학비즈니스벨트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과학자로서 갈망해온 중이온가속기 사업을 추진할 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중이온가속기는 중이온을 빛의 속도로 가속해 특정 연구대상 물질에 부딪쳐 깨진 상태를 보거나 이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해 물성을 분석하는 장치다. 우주의 비밀을 풀려는 천체물리학 등 기초과학은 물론 핵물리학 · 의학 · 바이오산업 · 재료공학 · 스핀트로닉스 등 응용과학의 발전에 필수적인 거대시설이다. 선진국들은 이런 시설로 기초연구를 진행하면서 후진국들이 쫓아가기 어려운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 텍사스오스틴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홍 교수는 1990년대 말부터 중이온가속기를 국내에 건설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결국 그는 2007년 말 현 정부 인수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면서 중이온가속기 사업을 현실화할 기회를 잡았다.
그는 과학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어머니와 중학교 은사를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손수 만든 딸기 잼 등 각종 식재료를 1년 동안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등 어린 그에게 '생활 속 과학'을 보여줬고, 중학교 물리선생님은 과학과 관련된 각종 번역서와 위인전을 권해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는 "창의력은 죽을 만큼 공부하고 나서야 생긴다"며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들 역시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보고 나서 그런 위업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가 전공으로 원자핵물리학을 택한 이유는 '세계와 물질의 근원'을 파헤치겠다는 열망에서였다. 홍 교수는 "가속된 중이온을 다른 물질에 충돌시키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원소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계획상 KoRIA는 부대연구시설을 포함하면 상암월드컵경기장의 10배 가까이 되는 면적으로 건설된다. 그는 곧 출범할 중이온가속기사업단의 단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다만 KoRIA 설계에 필요한 예산이 거의 확보되지 못한 점이 그의 걱정거리다. 비즈니스벨트법 수정안은 올해 KoRIA의 상세설계 등 벨트 조성에 600억원가량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돼 있었지만 여당의 법안 단독처리 혼란 속에 과거 원안이 통과되면서 100억원으로 줄어버렸다.
홍 교수는 "간신히 잡은 과학기술 대도약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각계의 사심 없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