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남한이 북한보다 장애물 많아"

[한경속보]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09년 8월 방북 직후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를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결과를 설명하면서 대북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북한보다 남한에 장애물이 많다며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언론인 안치용씨는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 대사관의 전문을 인용, 2009년 8월 25일 현 회장이 스티븐슨 대사와 함께한 조찬에서 “이번 방북은 파산 위기에 처한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 사업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보다 남한에서 훨씬 더 장애물이 많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주한 미 대사관은 전문에서 “현 회장은 “정부 간 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번에 김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5개 항을 이행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며 탄식했다”고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 2009년 방북에서 현 회장과 김 국방위원장이 오찬을 함께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와 달리 저녁 만찬을 함께하며 상세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현 회장은 김 국방위원장의 측근인 김양건 아태평화위원장과 별도로 만났다고 스티븐슨 대사에게 설명했다.

현 회장에 따르면 김 국방위원장은 당시 만찬에서 “합의서에 서명한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고인이 됐지만 ‘나는 아직 아직 살아있다’”며 합의서 정신을 존중해야한다 고 말했다.또 김 국방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왜 전 정권의 남북대화 경험을 이용하지 않는냐”고 현회장에게 묻기도 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현 회장에게 “남북 관계에서 통일부가 밀려나고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통상부가 주도하고 있다”며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상호불신”이라고 주장했다.이날 만찬에서 김 국방위원장은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는 사상 최악이며,중국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현 회장은 전했다.현 회장은 스티븐슨 대사에게 “김 국방위원장이 한때 평양 거리에 일제 자동차의 통행을 금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을 다른 북한 관리에게서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위키리크스 폭로는 사실이 아니다”며 “당시 스티븐슨 대사에게 전한 대화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됐다”고 부인했다.현대그룹은 “당시 현 회장은 우리 정부에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으며,당시 북측이 다소 유화적이고 우리정부가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현대그룹은 “현 회장은 김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 적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