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예산 싹둑 … 예술인들 "설 무대 없다"

시의회, 공연사업비 대거 삭감 … 시민 무료공연 줄줄이 축소
서울시의회가 올해 서울시 예산에서 문화 · 예술공연 사업비를 대폭 삭감해 시민을 위한 무료 행사들이 줄줄이 퇴출 또는 축소 위기에 몰렸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잃게 된 순수예술인들은 "메마른 서울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의회 "서울광장은 공연장 부적합"대표적인 행사는 올해 예산 15억원이 전액 삭감돼 폐지 위기에 몰린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이다. 매년 5~10월 서울광장에 상설무대를 설치해 저녁마다 무료 공연을 여는 행사다. 2004년 서울광장 개장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해엔 215개 팀 2426명이 100회 공연을 벌여 21만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공연 동영상이 시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올라가기 때문에 무명 예술인들에겐 인지도를 높일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측은 지난달 "모든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인 서울광장은 대형 공연을 열기에 부적합한 장소이고,축제성 행사가 난립하고 있어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관련 예산을 모두 깎았다.

◆예술단체 "공연 기회 박탈…참담"시의회는 또 2003년 시작된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산 30억원 중 절반인 15억원을 깎았고 1989년 시작된 '서울드럼 페스티벌' 예산도 6억원 가운데 3분의 1인 2억원을 삭감,프로그램이 대폭 줄어들 판이다. 시의회가 이 행사를 서울시의 전시성 이벤트로 규정해 예산을 삭감했다는 사실에 예술인들은 더 분노하고 있다.

이경우 한국재즈협회 사무총장은 "시민들이 무료로 고급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말살한 정책"이라며 "한 사람당 유료공연의 5분의 1 수준인 20만~30만원만 받고 한 달반 이상 정성껏 연습해 공연을 올려왔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무대를 없앨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서울광장 무대에서 공연한 스타급 색소폰 연주가 이정식씨도 "문화복지를 전시성 행사로 규정하고 정치적 잣대를 들이댄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외국인들이 많이 보러 오는 관광자원을 스스로 폐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인기가 높지 않은 비주류 장르의 상실감은 더하다. 신덕호 한국판소리보존회 사무국장은 "국악 공연은 티켓 파워가 약하기 때문에 안그래도 무대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며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국악 공연이 홀대받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무명의 한 인디밴드 멤버는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2000여명을 앞에 두고 공연했을 때 느꼈던 자부심과 희열이 산산조각나게 됐다"며 "공연비로 라면이라도 사먹을 수 있었는데 이마저…"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울시 "군악대라도 불러야…"이번 '줄삭감 폭탄'은 민주당 시의원들이 한강예술섬 예산 406억원을 전액 삭감하면서 "비싼 오페라 공연 위주인 한강예술섬보다는 시민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든 것과도 상충돼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문화예술과는 행사 명맥을 유지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나 군악대,경찰악대처럼 출연료를 받지 않는 공연자를 섭외하는 방안까지 생각해봤지만 공연의 질이 떨어질 게 뻔해 '안 하느니만 못한' 행사가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으로는 봄,여름에 진행되는 문화행사 개최는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서울시 반응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