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플라자] 적색경보 울린 '전력 수급'

급증하는 소비량 예비율 밑돌아 … 요금체계 개선·절약생활 시급
선진국에서도 광역정전은 간혹 발생한다. 2000~2009년 인구 50만명 규모의 도시가 소비하는 50만㎾ 이상의 광역정전이 국내에서는 한 번에 그쳤지만,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는 21회나 발생했다. 광역정전의 주범은 전력설비 투자 부진이다. 부실한 단기대응은 종범이라 할수 있다. 정전되기 이전 0.1초 이내의 전압 저하에도 산업계는 큰 피해를 입는다. 전력공급이 부족하면 송전선이 자동 차단된다. 송전선은 그물망 구조로 돼있어 초기대응에 따라 정전이 넓게 번지거나 좁게 끝날 수 있다.

새해 업무가 시작된 첫날인 지난 3일 오전 수요 급증으로 예비전력이 한때 400만㎾ 아래로 내려가 비상대응 일보직전까지 갔다. 전력수요는 7일 오전 7142만㎾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수요관리로 438만㎾의 예비전력을 유지했다. 수요관리란 사업장의 조업을 일시조정해 전기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여름과 겨울철 50만~150만㎾ 정도의 수요관리로 수급을 맞춰나간다. 그간 최대 전력수요는 늘 여름에 있었는데 2009년부터 겨울로 바뀌었다. 난방 전기가 수요 급증을 주도했다. 석유와 가스가격에 비해 낮은 전기요금이 핵심 원인이다.

최대수요 시점에 정전의 위험이 커지므로 이를 잘 넘기는 단기대응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국내 전력수급이 어려운 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적정 설비예비율은 피크 때를 기준으로 10~15%를 잡는다. 미국이 27.7%,프랑스 13.3%,독일 8.6%,일본 8.4% 등이다. 우리나라는 4.8%로 크게 낮은 편이다. 단기적으로 전력수급 안정을 위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전력공급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온실가스 저감과 경제성에서 원자력만한 것이 없다. 그간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이 부진했다. 건설 중인 신고리원전 140만㎾가 2014년 9월에야 가동되므로 그때까지는 수급에 여유가 없다. 송전망 건설은 더 어렵다. 현재 신고리원전~창녕 간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 님비(nimby)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전력수요관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현재 한전이 150만㎾,전력거래소가 60만㎾ 정도를 수요관리하고 있다. 1년 중 최대수요가 걸리는 수십시간이 관건이다. 이때 수요관리는 수조원이 들어가는 발전소나 송전망을 그만큼 건설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최근 세계 전력업계의 논의가 수요관리와 스마트그리드에 집중돼 있음도 이를 반영한다.

셋째, 우리나라 1인당 전력소비량은 일본이나 유럽보다 높다. 일본보다 20%,영국보다 50%를 더 쓴다. 과거 '궁핍한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전기를 물처럼 쓰는' 문화를 만들었다. 내복과 조끼와 스웨터를 입고 적정한 난방온도를 생활 속 문화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넷째, 석유를 전기로 바꿀 때 본래 갖고 있던 열량의 36%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를 발전효율이라 한다. 석탄은 38%,가스복합은 75%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가 석유나 가스보다 값이 싸니 자원 배분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은 전기생산 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책정돼야 정의롭다. 낮은 전기요금은 발전설비와 송전망에 대한 투자를 억누르고 대체열원 소비를 위축시켜 국민경제를 해친다. 대부분 국가가 전기요금을 통제하지만,OECD 회원국 중 우리처럼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예는 드물다. 10일 낮 전력수요가 7184만㎾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보였다. 전력수급에 위기가 오면 수요관리,전압강하,강제 부하차단 등 비상대응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가계를 비롯해 산업 전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와 업계,소비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염명천 < 전력거래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