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O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 '뉴실버'가 은퇴지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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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 갖추고 일·여가 동시 추구김선태씨(56) 부부는 얼마 전 노모(82)를 모시고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공흥리로 이사했다. 삼부토건을 퇴직한 뒤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다. 고향은 충남 논산이지만 노모조차 고향이 아닌 '서울 근교'를 고집했다. 병원이 가까운 데다 봉사할 단체가 있고,직장을 다니는 다른 가족들도 쉽게 모일 수 있어서다.
문화·의료시설 가까운 수도권 선호
준비된 은퇴세대인 '뉴실버세대'의 등장으로 한국인의 은퇴지도가 바뀌고 있다. 은퇴자들의 주거지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 전반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뉴실버세대는 새로운 가치관과 경제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실버세대'와 다르다. 이들은 60세가 넘어도 여전히 팔팔하다. 구매력도 상당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삶에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강하다. 삶을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에게 은퇴는 인생의 끝이 아니다. '제2 인생'의 시작이다.
뉴실버세대는 우선 은퇴자들의 주거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이들은 아무 연고가 없지만 서울과 가까운 곳에 터전을 잡는다. 삼성생명 FP센터가 2009년 서울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한 60세 이상 1만29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기도로 옮겨간 사람이 전체의 86.5%(1만1230명)에 달했다. 강원도 원주 등 서울에서 2시간 이내에 위치한 곳까지 포함하면 비중이 90.5%에 이른다.
이에 따라 최근 경기도 용인 양평 가평 여주,강원도 원주 홍천 횡성 등 서울 근교에 '은퇴자 주거 벨트'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경기 충북 강원 등 3개 도의 경계지역인 원주시 부론면의 경우 10년 전부터 은퇴자가 모여들기 시작해 현재 100세대가 넘는 은퇴자들이 살고 있다. 구매력을 가진 뉴실버세대는 산업 지형도 바꾸고 있다. '구몬'이나 '빨간펜'으로 알려진 학습지회사 교원그룹은 뉴실버세대를 겨냥한 실버산업을 '10년 후 그룹을 먹여 살릴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했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날 뿐만 아니라,저출산으로 줄어드는 학령기 아동 수요층을 고령화로 늘어나는 뉴실버세대로 대체하는 효과를 기대해서다.
뉴실버세대를 염두에 둔 보험업과 컨설팅 사업도 활황세다. 퇴직연금이 활성화하면서 계리사 등 관련 전문가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유산 상속과 유언장 작성 등에서 법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뉴실버세대가 늘면서 변호사 변리사들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안락한 죽음'을 위한 간호 전문 기관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뉴실버세대가 아닌 '보통 실버세대'도 아직 상당하다. 이들은 경제력도 없고,자아실현의 방법도 찾지 못한 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은퇴 준비는 이제 필수과제"라며 "행복하고 건강한 뉴실버세대가 될 것인지,그렇고 그런 실버세대에 머무를 것인지는 은퇴 전에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강동균/이호기/이상은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