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모리(靑森)] 일상은 잠시 잊자 … '雪國'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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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 몬스터' 사이로 쾌감 질주 … 텅빈 슬로프서 나홀로 활강도
어딜 가도 푹신한 '파우더 스노' … 밤엔 사케 한잔에 피로가 싹~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쯤 지났을까. 비행기가 일본 아오모리공항에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창 밖을 내다봤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오모리(靑森)의 전경을 눈에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래쪽은 온통 구름뿐.비행기가 빠르게 고도를 낮추는 게 느껴졌지만 좀처럼 구름 속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불쑥 눈덮인 활주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행기 창문을 빠르게 스쳐가는 눈발.땅도 하늘도 온통 하얗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유키구니(雪國)였다'로 시작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처럼 구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유키구니'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소설의 무대는 니가타(新潟)지만 아오모리도 그에 못지않게 눈이 많은 고장이다. 이곳 사람들의 겨울철 일상이 집 앞 눈을 치우는 일로 시작된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닌 듯하다. 사흘간의 아오모리 체류 기간 내내 눈이 내렸다. 사흘간 스키장 3곳(나쿠아 시라카미 · 하코다산 · 모야힐즈 스키장)을 체험하는 일정이라 조금 빠듯했다. 하지만 3곳 모두 아오모리공항에서 1시간 안팎 거리여서 1~2곳을 정해 떠나는 여행이라면 2박3일이라도 스키나 보드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리프트 대기 시간이 없다는 점과 습기가 적어 푹신푹신한 파우더 스노(powder snow)에서 활강을 즐길 수 있다는 공통점을 빼면 3곳이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 만족도 200%의 여행이 될 수 있다.
◆가족과 함께라면 나쿠아 시라카미
나쿠아 시라카미(옛 아지가사와) 스키장은 2003년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지답게 아오모리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17개 코스 중 10개가 초급자용이어서 가족 여행객에게 딱 맞는 곳이다. 눈썰매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즐길거리도 마련돼 있다. 그렇다고 중상급자가 지루해할 만큼 만만한 코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곤돌라를 타고 3㎞ 가까이 오르면 표고 921m의 정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모든 코스가 연결돼 최장 3.4㎞의 활강을 즐길 수 있다. 중간에 1m 이상의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비압설(非壓雪) 코스를 선택하면 물 위를 질주하는 듯한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나쿠아시라카미호텔&리조트의 현관을 나오면 바로 리프트와 곤돌라를 탈 수 있어 더욱 편리하다. 지난해 한국 기업이 인수한 이 호텔은 한국인 직원도 5명이나 돼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주말밤에 펼쳐지는 축제 '유키코네부타'도 볼거리.슬로프를 타고 내려온 거대한 등(燈) 앞에서 북과 춤 불꽃놀이가 어우러진다.
◆산악스키의 명소 하코다산하코다산 스키장은 스키 천국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산악스키 명소다. 로프웨이(케이블카) 탑승장에는 건물 밖까지 긴 행렬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만큼은 줄 서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101명 정원인 대형 로프웨이에 빽빽이 탑승한 스키어,보더들의 표정이 긴장 반 기대 반이다. 표고 1300m가 넘는 산정공원역에 도착하니 눈보라 때문에 눈을 뜨고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겹다.
2개의 코스 중 1곳이 폐쇄됐다는 표지판 너머로 나무에 쌓인 눈이 얼고 그 위에 또 눈이 쌓인 스노 몬스터(樹氷 · 수빙)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맑은 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스노 몬스터 사이를 질주하는 쾌감과 함께 바다 건너 홋카이도까지 조망하며 최장 5㎞를 활강할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아오모리 야경이 한눈에 모야힐즈모야힐즈 스키장은 앞의 두 곳에 비하면 6개 코스에 최장거리 1.4㎞의 소박한 곳이다. 하지만 공항에서 30분 거리인 데다 아오모리 시내의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보며 야간스키를 즐길 수 있다. 하코다산 스키장이 지척이라 낮에 하코다에서 산악스키,밤에 모야에서 야간스키를 타면 금상첨화다.
빌라시티모야호텔에 묵는다면 가까운 아오모리 시내로 나가 일본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다.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이자카야에서 사케 한잔 마시거나 라멘을 먹으며 낮 동안의 피로를 푸는 것도 좋다. 참고로 아오모리에서 유명한 사케는 '좃빠리'.아오모리 방언으로 '고집스럽다'는 의미의 이 술을 주문할 땐 발음과 표정관리에 각별히 주의할 것.슬며시 번지는 웃음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아오모리=김정태 기자 inue@hankyung.com
◆ 여행팁
인천공항에서 아오모리공항까지는 대한항공이 화·수·금·일요일 직항편(오전 10시30분 출발)을 운항하고 있다. 아오모리로 갈 때는 2시간,인천공항으로 돌아올 땐 3시간이 걸린다. 하코다산 등은 5월까지도 스키를 탈 수 있다지만 충분한 적설량과 설질을 즐기려면 1~3월이 최적기.하나투어,모두투어,일본스키닷컴 등이 나쿠아 시라카미와 하코다&모야힐즈 스키여행 상품을 내놓고 있다. 월별 스키장별 가격대가 여행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확인해봐야 한다. 북도호쿠3현·홋카이도 서울사무소(beautifuljapan.or.kr,02-771-6191)에서도 아오모리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