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업 전방위 조사] "MB 한마디에…물가책임 기업에 떠넘기나"

"주유소 행태 묘하다" 언급
"정부 가격결정 과도한 개입"
정유사 'ℓ당 마진 9원' 항변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 4사 및 액화석유가스(LPG)업체 2사에 대한 불공정행위 혐의 조사에 나서자 해당 기업들은 초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론 강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13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유가가 어떤 것보다 다른 물가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면서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공정위가 즉각 조사에 착수하자 "결국 기름값을 내리라는 지침 아니겠느냐"고 해석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해당 기업들은 "정부가 물가 상승의 책임을 모두 기업에 돌리려 한다"며 기업 경영의 고유 영역인 가격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정부의 태도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이 대통령 기름값 인하 지침?

이 대통령은 "기름값의 경우 유가와 환율 간 변동관계를 면밀히 살펴 적정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08년 7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할 때 (휘발유 소매가가 ℓ당) 2000원 했다면,지금 80달러 수준이면 조금 더 내려가야 할 텐데 1800~1900원 정도 하니 더 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제 원유값이나 환율이 떨어졌는데도 소비자값은 그에 비례해 하락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정유사들의 가격 결정 시스템을 한번 더 챙겨보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유가를 이용해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으니까 잘 점검해보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석유류 가격이 국민 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니 면밀히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나 지침을 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업계도 나름대로 계산법이 있을 것이고 정부도 나름 지침이 있을 텐데 석유류 가격이 서민 생활에 굉장히 민감하고 물가에서 가중치가 크다는 면에서 합리적으로 잘 살펴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유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는 발언은 가격 담합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가격 올렸다 다시 내리는 기업들

정유업계는 "기름값이 높긴 하지만 가격을 내릴 여지가 거의 없다"며 난감해 하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의 소매 가격은 지난해 10월 첫째주 이후 3개월 연속 상승했다. 이 대통령이 예로 든 2008년 하반기 이후 2년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보통 휘발유를 기준으로 제품가격에서 정유사의 세전공급가격이 44%,유류세가 50%,유통 · 주유소 이윤이 6% 정도라 정유사가 가격을 줄일 수 있는 여지는 없다는 게 업계 측의 항변이다.

지난해 3분기 정유사들의 ℓ당 마진은 9원가량으로 1800원이 넘는 휘발유 가격의 0.5% 수준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제조과정이나 유통체계가 단순하고 원가와 환율 등 가격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며 "ℓ당 10원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택시 등의 연료로 쓰이는 액화석유가스(LPG) 업계는 이미 대통령의 '한마디'에 홍역을 치렀다. 2009년 9월 이 대통령이 "LPG,우유 등 서민물가를 관리하라"고 말한 뒤 공정위가 담합혐의를 조사했다. 지난해 말 SK가스는 프로판과 부탄가스 가격을 ㎏당 249원 올렸다가 경쟁사 E1이 낮은 수준으로 결정하자 다시 조정했다.

홍영식/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