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장가격 억누르기] 폭등한 원재료값 폭등 반영 못해 … 식품업계 실적악화 '비상'

● 고민 커지는 내수기업

설탕업체 작년 영업이익 최대 59% 줄어들어 … 두부·밀가루 사업도 적자
원가부담 가중되는데 '정책리스크'에 경영 타격

"적자를 피하기 위해 3주 전에 올린 제품 가격을 다시 내렸습니다. 지금 정부의 '물가잡기' 분위기로는 곡물 등 원재료값이 뛰더라도 제품가에 반영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입니다. "

대표적 내수기업인 식품업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상 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국내외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지만,원료값 상승분만큼의 제품가격 인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가 물가잡기에 무더기로 뛰어든 가운데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인상 품목에 대한 담합조사까지 내세운 것이 결정적인 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커지는 '정책 리스크'

"정말 힘듭니다. 묘안이 없을까요. "(두부업체 관계자),"1970년대식 물가정책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설탕업체 관계자)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의 압박에 1차 타깃이 된 식품업계는 일단 몸조심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에게 14일 밝힌 식품업계 관계자들의 발언엔 '황당과 고민'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 제분업체 관계자는 "기업이 공공기관인가요"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작년 7월부터 급등한 국제 소맥(밀가루의 원료) 가격이 지난달부터 원가에 반영되면서 가격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정부 정책은 기업이 기본적인 수익도 낼 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기업 경영실적이 정부 정책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이른바 '정책 리스크'에 대한 우려였다. 한 제당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설탕값을 올린 것은 기획재정부의 의견을 반영해 최소한으로 조정한 것으로 인상이 불가피했던 것은 정부도 알고 있다"며 "공정위가 담합 운운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토로했다. 정성훈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상반기엔 고가의 원재료가 본격 투입되는 시기여서 원가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익 악화 불가피

작년 말 설탕 가격을 9%가량 인상했던 CJ제일제당 대한제당 삼양사 등 제당업체들은 설 연휴 이후에 가격을 한번 더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지만,이제 "가격인상은 물 건너 갔다"는 분위기다. 이들이 가격 인상을 검토했던 것은 설탕 원가의 80%가량을 차지하는 국제 원당가격이 작년 5월 이후 폭등했기 때문이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지난해 5월 13.67센트까지 떨어졌던 국제 원당가는 작년 11월 초 33.11센트까지 치솟았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작년 상반기에만 설탕부분에서 수백억원의 적자가 났다"며 "원당 가격이 폭등하자 설탕가격에서 원당이 차지하는 비율도 65%에서 80%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사업 등을 함께 벌이는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 감소하는 데 그치지만,삼양사와 대한제당은 각각 36%와 59%나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분업체들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동아원 관계자는 "환율과 소맥가격에 따라 밀가루 가격을 조정했던 탓에 현재 가격은 3년 전 제품가격에 비해 28%가량 낮다"며 "국제 소맥가격이 크게 오른 만큼 설 이후 가격인상은 불가피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물가안정 기조가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두부업계 1위인 풀무원 측은 "국산 백태 가격이 지난 1년 새 80% 넘게 치솟으면서 작년 두부사업부문은 상당한 적자를 기록했다"며 "소폭이긴 하지만 가격을 인상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가격을 다시 내리게 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두부사업은 풀무원식품 매출의 40%를 차지한다. ◆곡물가 하락 이외엔 해결책 없어

설탕이 주력사업인 대한제당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도에 비해 59%가량 감소했다. 설탕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가 났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작년 말 9%대의 가격 인상으로 일부 도움이 되긴 하지만 흑자로 돌아서기는 여전히 힘든 구조"라며 "국제 원당 가격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두부값을 20%가량 올렸다가 최근 5.5% 인하한 풀무원 관계자도 "최소한 수익구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산 콩값이 내려가는 것 이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고 전했다.

김철수/심성미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