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 영어도 경영도 골프도 "1등 아니면 성이 안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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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차례 뚝심협상으로 외자유치한 '증권가 승부사'"투자하겠습니다. " 외환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2000년 12월 서울 을지로 쁘렝땅빌딩에 있던 옛 제일투자신탁증권 본사 콘퍼런스룸.황성호 당시 제일투신 사장(현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화면 넘어 에드워드 하이엠 푸르덴셜그룹 인수 · 합병(M&A)부문장의 입이 떨어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든든한 글로벌 인맥
20년 이상 외국 금융사 몸 담아, 印·싱가포르 금융계 거물과 친분
위기의식서 싹튼 경영철학
정년 늘려 직원 성취욕 북돋아, 작년 26개 부문 1위…올 50개 목표
황 사장이 부임한 1999년 제일투신은 대우채 사태 등의 여파로 자본금 2300억원을 모두 까먹은 상황이었다. 증자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황 사장은 '외자유치로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직접 만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가방에 챙겨 1년여 동안 30차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협상단은 단촐하다 못해 초라할 정도였다. 황 사장과 허창복 변호사(현 법무법인 세종),허민회 기획실장(CJ그룹 기획담당 부사장) 등 3명이 전부였다. "한 번 회의할 때마다 저쪽에서는 실무자를 포함해 변호사 회계사 등 10여명이 줄줄이 나오는데,우리는 달랑 3명이었습니다. 얼마나 위축됐겠어요.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1년여를 협상에 임했던 게 제 개인적으로도 글로벌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
황 사장은 외자유치 성과를 인정받아 2001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글로벌 승부사'로서 쌓아온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게티스버그 연설'로 시작된 영어인생"정말 한국사람 맞습니까?" 우리투자증권이 작년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코리아 콘퍼런스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황 사장은 행사 후 현지 방송 채널5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뛰어난 영어실력에 싱가포르 기자도 놀랐던 것.
황 사장은 증권가에서 가장 영어를 잘 하는 CEO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푸르덴셜과의 협상도 통역 없이 직접 의사소통했다. "광희중학교를 졸업하고 2차였던 경희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영어선생님이 방학숙제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모두 암기해오라'는 거예요. 방학이 끝나고 숙제검사를 하는데 급우 60여명 가운데 숙제를 해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죠.어찌나 짜릿하던지…."
1953년생인 황 사장이 고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영어교재가 없었다. 황 사장은 대학생인 큰 형의 방에 꽂혀 있던 취업준비용 영어책을 끌어안고 영어와 씨름했다. 요즘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CNN 등을 시청하며 영어감각을 유지한다. '영어 울렁증'을 호소하는 CEO들에게 황 사장은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훌륭한 영어를 이끌어 낸다"고 조언한다. "발음이 나쁘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상대방 문화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느껴지는 영어를 구사하는 게 중요합니다.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프로필을 숙지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
◆외국계 직장생활로 쌓은 글로벌 인맥
황 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72학번이다. 고대 72학번은 구자열 LS전선 회장,김윤 삼양사 회장,허진수 GS칼텍스 사장,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등 재벌가 자제들이 유독 많이 입학해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동기들과 달리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황 사장은 4학년 때인 1979년 봄 일찌감치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사를 결정했다. 30여년 직장생활 동안 한국 기업에 근무한 적은 한화그룹 및 제일투신에 몸 담았던 기간을 포함, 10년이 채 안된다. 나머지는 모두 씨티은행 다이너스카드 PCA투자신탁운용 등 외국 금융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이때 쌓아놓은 글로벌 금융인맥은 황 사장이 해외비즈니스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인도 아디티야비를라그룹의 아제이 쓰리나바산 금융부문 회장,흥트란 국제금융협회(IFF) 부총재,팽화초이 싱가포르 풀러튼자산운용 부사장 등은 황 사장의 든든한 조언자들이다.
특히 PCA투자신탁운용 사장 시절 이 회사 아 · 태지역본부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아제이 회장과는 막역한 사이다. 2009년 6월 우리투자증권 사장으로 취임한 지 1년도 채 안돼 비를라그룹과 5억달러 규모의 펀드조성에 대한 전략적 제휴(MOU)를 체결,인도시장 진출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던 데도 개인적인 친분이 크게 작용했다.
◆독하게 쌓은 골프실력
황 사장은 증권업계 CEO 중 '골프 최고수'로 꼽힌다. '라이프 베스트'는 2005년 경기도 가평군 크리스탈밸리에서 기록한 68타(4언더파).황 사장이 '맞상대'로 인정하는 인물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정도가 유일하다.
이처럼 골프를 잘 치게 된 데는 승부근성이 크게 작용했다. 1983년 골프 입문 후 220야드 정도 나가던 드라이버 거리를 늘리기 위해 안 해본 운동이 없다. 골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연습장에 들러 그날 잘 안 풀린 샷을 연습하는 일을 빼먹은 적이 없다.
이 같은 노력으로 황 사장은 58세 '장년 골퍼'임에도 불구하고 260야드를 날린다. 욕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 올해는 드라이버 거리를 280야드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회사 임직원들과 '여의도를 깨우는 모임'(일명 '여깨모')을 결성, 매일 아침 여의도공원을 4㎞씩 달리고 있다. "코넬대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니던 1980년대 초반 전 세계에서 온 비즈니스맨들과 교류를 했습니다. 오후 수업이 없었던 매주 수요일만 되면 학우들이 모두 골프를 치러 나가는 겁니다. 그때 '골프를 안 치면 글로벌 비즈니스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고 이후 미친 듯이 매달린 거죠."
◆위기의식이 1등을 낳는다
황 사장의 경영철학은 한마디로 '1등 주의'다. 우리투자증권이 요즘 내보내고 있는 '우리투자증권에는 1등이 참 많습니다'라는 광고도 황 사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만든 것이다. 그의 1등 주의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직장생활하면서 '내일 회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위기였죠.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위기가 언제나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이제 걱정 없이 돈 벌 수 있는 첫 직장(우리투자증권)에 왔으니 1등을 목표로 뛰어가야죠."
황 사장은 "회사가 큰 성취를 이루려면 직원들 하나하나가 절실함을 가져야 하고, 그 절실함은 꿈을 꾸는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정년을 종전 55세에서 58세로 늘리고 기업금융(IB)스쿨,프라이빗뱅킹(PB)스쿨,트레이딩스쿨 등 다양한 주말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60세까지 높은 연봉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고 싶어하는 직원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다.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이행과정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CEO의 임무다. 이를 위해 사장 직속의 1등추진 사무국을 최근 신설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26개 부문에서 1등을 했습니다. 올해는 50개 부문에서 1등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직원들의 능력이야 제가 지금까지 다녔던 그 어떤 직장보다 뛰어나니 동기부여만 잘 해주면 돼요. 그리고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지 체크해 나가면 목표달성은 문제없습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