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가 자초한 전력대란

규제 위주 전력산업 관리 한계…시장원리 따른 경쟁 도입할 때
전력대란이 현실이 되고 있다. 겨울철인데도 불구, 몇 차례 최대 전력수요를 경신했고 예비율도 5% 가까이로 떨어지고 있다. 여수산업단지에서 정전으로 수백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했으며 대형건물 실내온도를 20도 이하로 제한하고 수도권 전철 운행간격을 늘리는 전력공급 제한조치도 시행될 예정이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고 소비시간대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소비자가 느끼는 전력 공급의 품질은 떨어진 셈이다.

전력대란의 이유를 추위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보다 더 추운 나라도 숱하고 예전에도 올 겨울보다 추웠던 적이 많다. 이보다는 전력산업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인 운영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장에서의 가격과 경쟁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정부 스스로 규제하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력산업을 '관리'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점이다. 시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격 시그널이다. 그런데 전기요금은 이미 생산원가에도 못 미친다. 전력생산 적정원가의 93.7% 수준이다. 지난 10년 동안 등유가격이 국제유가가 뛰어서 두 배 가까이 오르는 동안 전기요금은 12%만 올랐다. 전기를 만드는 연료값보다 전기값이 싼 셈이다. 한국전력은 몇 차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고 겨울철 난방용 전기 사용량이 대폭 증가했다. 전력수요 예측이 잘못된 원인도 원가를 반영하지 못한 전기요금 때문이다. 2002년 전력수급계획을 발표할 때 2010년 최대전력수요를 6062만㎾로 전망했지만 며칠 전 최대전력수요는 7300만㎾를 넘어섰다.

2004년부터 불어닥친 원유가 상승으로 석탄,석유,가스 등 모든 연료가 이에 연동해서 올랐는데 그렇지 못한 전기만 상대적으로 싸졌으니 당연히 전기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가 앞으로 전기요금을 원가에 연동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우리나라 전기요금 규제의 원칙은 총괄원가주의이다. 총괄적으로 원가를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다. 선거를 앞두고 또 요즈음처럼 물가를 잡겠다고 공공요금을 동결하거나 인상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전기요금은 원가를 감당할 만큼 올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원가연동제를 도입해도 지금처럼 대통령이나 정치권에서 물가잡기 일환으로 공공요금 단속에 나서면 제도를 도입해 놓고도 시행은 어려울 것이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을 공익산업규제위원회라 불리는 독립된 제3의 기관에서 규제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위원회라는 규제기관이 이를 관장하고 있지만 지식경제부 소속이어서 사실상 독립적으로 전기요금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전력산업에 경쟁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공급에 경쟁을 허락하지 않아 한전 말고는 소비자를 위해 품질 좋고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경쟁자가 없다. 정부는 이미 한전의 발전부문을 분할해 6개의 발전회사로 나누었으나 아직까지도 한전의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또한 송배전과 전기의 판매 그리고 소매공급 모두를 한전만이 담당하고 있어서 소비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기위원회에 있었던 경쟁촉진 부서도 국민의 정부 시절 없애 버렸다.

전력대란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하는 쪽은 정부가 아니다. 소비자와 국민이다. 정부에 전력산업을 맡기기보다는 가격과 경쟁이라는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소비자와 국민이 전력산업의 미래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 양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봉 < 한국경제硏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