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현대판 솔로몬의 지혜

최근 유명한 미국 드라마를 봤다. 복잡한 사건 현장에서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의외의 범인을 밝혀내 정의를 실현하고 당당하게 끝난다.

낯설고 신기한 시험기기와 과학적 추리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도와줘요!" 하고 부르면 바로 달려와서 시시비비를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가려주고 멋지게 사라지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소비생활을 하다 보면 원하지 않는 어려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 제품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결함 제품이 유통되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통신 · 초고속 인터넷 등 서비스 문제로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상품 결함과 서비스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면 소비자 혼자서 규모가 큰 업체를 상대로 결함 문제를 설명하고 피해를 보상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상품의 품질과 관련해 소비자와 사업자 간에 분쟁이 생기면 원인을 밝혀내기가 어렵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제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게다가 그 결과는 양 당사자를 모두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필자가 일하는 곳에는 해마다 20여만 건의 소비자 분쟁이 접수된다. 일단 분쟁이 접수되면 모든 기능이 총동원되는데,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적인 시험을 통한 원인 규명'이다. 첨단 시험 검사 장비를 활용해 테스트 전문 인력들이 피해의 원인을 찾는다. 소비자들이 제시한 제품의 문제점을 면밀히 살피고,그에 적합한 시험을 한다. 시험 결과에 따라 품질의 이상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 말 그대로 '분쟁 해결을 위한 과학적인 원인 규명'이다. 미국 드라마와 달리 현실이라는 한계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피해를 보상받고 밝은 얼굴로 돌아가는 소비자를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

최근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유기농 섬유 제품과 유기농 식품 등도 과학적인 시험을 거쳐 사실 여부를 발표했다. 엉터리 유기농 제품이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판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탈무드에는 솔로몬왕의 유명한 재판 이야기가 나온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했다. 왕은 아이를 나누어 각각 반씩 가져가라고 결정을 내렸다. 한 여인이 아이를 포기할 테니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지혜로운 왕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포기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라고 판결했다.

이런 재판이 지금 벌어진다면 어떻게 했을까? 바로 DNA 검사를 통해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정확하게 밝혀낸 뒤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저녁 늦은 퇴근길 시험검사실을 바라보니 솔로몬의 지혜에 과학적 증거를 더하기 위해 오늘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김영신 < 한국소비자원장 ys_kim@kc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