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황창규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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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던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현재 지식경제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과학기술부를 제치고 최대 연구개발 부처로 부상한 지식경제부의 최고기술경영자(CTO) 자리다.
그가 최근 구설수에 올랐다. 기자들과의 신년 오찬간담회에서 "삼성의 갤럭시S보다 애플의 아이폰이 좀 더 편한 것 같다"는 말 때문이었다. 결국 황 단장은 별도의 설명자료까지 내야 했다. "갤럭시S의 하드웨어 경쟁력은 (아이폰과) 대등하지만 사용자 환경이나 소프트웨어 등에서 다소 미진한 것은 문화적 토대가 필요(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는 얘기다. 한 명의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정부 부처 최고 기술경영자로서 황 단장의 비교는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 설사 그가 갤러시S가 아이폰보다 좀 더 낫다고 반대로 얘기했다고 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두 스마트폰은 지금 시장에서 경쟁 중이고,궁극적인 승자와 패자는 결국 시장에서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국내 기업들이 스마트폰을 먼저 치고 나가지 못한 안타까움에서 그 이유를 문화적 토대에서 찾았다고 한다면 그가 해야 할 얘기는 달라야 한다. 그 문화적 토대의 실체라는 게 무엇이고,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자신의 소신을 밝혔더라면 훨씬 더 의미가 있고,주목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기자 간담회에서 황 단장은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하기는 했다. "이제는 '기술 주도(technology push)'에서 '시장 중심(market pull)'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식의 단순 이분법으로 과연 지금의 문화적 토대가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술 주도냐''시장 중심이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론가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그 어떤 기술혁신도 기술 주도와 시장 중심,둘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고 딱 구분 짓기는 어렵다. 과거 과학과 기술 간에도 무엇이 먼저냐는 비슷한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한 사회에서 기술혁신이 왕성하게 일어나려면 과학과 기술, 그리고 시장 사이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결론이다.
더구나 우리가 언제 원천기술을 많이 확보하고도 상용화 기회를 다른 나라에 뺏길 만큼 기술 주도 모델로 간 적이 있었던가를 자문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술 주도로 간 것은 선진국들이었고 우리는 이들이 개척해 낸 시장을 철저히 따라왔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은 언제까지 과거의 성공 경로를 답습할 것이냐에 있다. 남들이 만든 경로를 쫓아가면서 일부에서는 앞서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창조적으로 새로운 경로를 앞장서 창출해 낸 것은 없다. 시간이 갈수록 똑같은 경로로 따라오는 중국의 추격에 초조감이 더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황 단장에 대한 기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메타 플랜(meta plan)''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등과 같은 현란한 용어들을 듣자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그가 말한 대로 독창적 혁신을 위한 문화적 토대가 정말 필요하다면 지경부의 연구개발 문화부터 창조적으로 확 바꿔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가면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신성장동력 발굴은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그가 최근 구설수에 올랐다. 기자들과의 신년 오찬간담회에서 "삼성의 갤럭시S보다 애플의 아이폰이 좀 더 편한 것 같다"는 말 때문이었다. 결국 황 단장은 별도의 설명자료까지 내야 했다. "갤럭시S의 하드웨어 경쟁력은 (아이폰과) 대등하지만 사용자 환경이나 소프트웨어 등에서 다소 미진한 것은 문화적 토대가 필요(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는 얘기다. 한 명의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정부 부처 최고 기술경영자로서 황 단장의 비교는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 설사 그가 갤러시S가 아이폰보다 좀 더 낫다고 반대로 얘기했다고 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두 스마트폰은 지금 시장에서 경쟁 중이고,궁극적인 승자와 패자는 결국 시장에서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국내 기업들이 스마트폰을 먼저 치고 나가지 못한 안타까움에서 그 이유를 문화적 토대에서 찾았다고 한다면 그가 해야 할 얘기는 달라야 한다. 그 문화적 토대의 실체라는 게 무엇이고,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자신의 소신을 밝혔더라면 훨씬 더 의미가 있고,주목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기자 간담회에서 황 단장은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하기는 했다. "이제는 '기술 주도(technology push)'에서 '시장 중심(market pull)'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식의 단순 이분법으로 과연 지금의 문화적 토대가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술 주도냐''시장 중심이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론가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그 어떤 기술혁신도 기술 주도와 시장 중심,둘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고 딱 구분 짓기는 어렵다. 과거 과학과 기술 간에도 무엇이 먼저냐는 비슷한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한 사회에서 기술혁신이 왕성하게 일어나려면 과학과 기술, 그리고 시장 사이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결론이다.
더구나 우리가 언제 원천기술을 많이 확보하고도 상용화 기회를 다른 나라에 뺏길 만큼 기술 주도 모델로 간 적이 있었던가를 자문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술 주도로 간 것은 선진국들이었고 우리는 이들이 개척해 낸 시장을 철저히 따라왔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은 언제까지 과거의 성공 경로를 답습할 것이냐에 있다. 남들이 만든 경로를 쫓아가면서 일부에서는 앞서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창조적으로 새로운 경로를 앞장서 창출해 낸 것은 없다. 시간이 갈수록 똑같은 경로로 따라오는 중국의 추격에 초조감이 더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황 단장에 대한 기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메타 플랜(meta plan)''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등과 같은 현란한 용어들을 듣자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그가 말한 대로 독창적 혁신을 위한 문화적 토대가 정말 필요하다면 지경부의 연구개발 문화부터 창조적으로 확 바꿔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가면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신성장동력 발굴은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