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CEO 리스크

미국의 인터넷 식품유통업체 피포드의 주가가 2000년 3월17일 54.5%나 폭락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 1억2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던 벤처 캐피털들은 계획을 줄줄이 철회했다. 일부 증권사는 피포드의 투자등급을 확 낮췄다. CEO인 빌 말로이가 건강을 이유로 사퇴를 발표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시장에선 말로이 건강의 금전적 가치가 수십억달러에 달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CEO의 스캔들이 주가를 끌어내린 사례도 있다. 휴렛팩커드 CEO였던 마크 허드는 비용절감과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 매출을 키웠으나 계약직 여성과 성추문 혐의로 지난해 6월 이사회 조사를 받은 뒤 오라클 공동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주주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주가가 급락해 90억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은데다 전반적인 신뢰성도 떨어졌다는 것이 이유다. 허드는 회사 기밀누설 혐의도 함께 받고 있어 법정 공방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 관심을 끌고 있다. 모범은행으로 꼽혔던 신한금융은 지난해 경영진 내분으로 CEO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서로 경영권을 차지하려고 소송과 폭로를 서슴지 않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떨어졌던 주가는 반등했지만 추락한 신뢰는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다. 신한사태의 영향으로 금감원은 금융회사 경영진의 경영관리능력을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높은 인기로 승승장구하던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갑작스런 병가로 충격에 빠졌다. 2004년 췌장암 판정 이후 벌써 세 번째 병가다. 처음엔 암 징후를 조기발견한 덕에 간단한 수술 후 바로 복귀했다. 2009년 1월 간 이식수술 때도 자신만만하게 "여름에 보자"고 말해 우려를 잠재웠으나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이메일을 통해 "빨리 돌아오기를 희망한다"고만 밝혀 내분비암 발병설,암 전이설 등 다양한 추측을 낳고 있다. '잡스 리스크' 여파로 애플 주가는 떨어졌고 경쟁사인 삼성전자 주가는 연 이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CEO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기업 운명이 갈린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마찬가지다. 회사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선 경영능력은 기본이고 건강과 도덕성까지 겸비해야 하는 시대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