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2세가 뛴다] (9) 매일식품 "아들 실수해도 믿고 맡기니 매출 4배 뛰었죠"

아버지 "신뢰가 최고 교육"
네 아이디어 맘껏 펼쳐봐라…실패엔 "다음에 잘해라" 격려

믿음에 보답한 아들
MSG 논란에 대체품 개발…베트남 등 해외시장 개척도
"아버지와의 갈등이요? 별 다른 게 없습니다만…."

20일 전남 순천 본사에서 만난 오상호 매일식품 상무(39)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1998년 대리로 입사, 올해로 12년째 아버지 오무 사장(70)과 함께 근무하고 있지만 크게 혼나거나 갈등을 빚은 적이 없다고 했다. 오 사장도 "오 상무가 알아서 잘 하는데 뭐"라며 웃기만 했다. 그는 "신뢰만큼 좋은 경영 교육은 없다"면서 "믿은 만큼 성과를 내 주니 내 입장에선 간섭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 "간섭할 필요 있나요"

매일식품은 1945년 오 사장의 어머니인 고 김방 여사가 순천 자택에서 간장,된장 등을 만들어 팔기시작한 게 창업의 모태가 됐다. 6 · 25 때 군납을 하며 회사의 모습을 갖췄고 뛰어난 맛으로 순천 지역에선 알아주는 기업으로 커 나갔다. 1970년대 말 고속도로가 뚫리고 서울의 대기업들이 지방 식품시장에 진출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오 사장은 라면 수프,조미료용 소재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사업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회사가 크게 흔들리자 당시 홍익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던 큰아들 오 상무를 회사로 불러들였다.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식품회사에 취업이 확정돼 있던 오 상무는 아버지의 부름에 한달음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오 사장은 아들의 입사 후 별다른 경영 수업을 시키지 않았다. 사업 아이디어를 마음껏 제시하게 하고 최종 결정 과정에서만 방점을 찍어줬다. 그나마도 아들이 끝까지 해보겠다고 하면 "알아서 하라"며 양보했다. "아버지의 간섭이 지나치면 아들이 제대로 능력을 펼칠 수 없기 때문"(오 사장)이었다.

의욕은 앞서는데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처음엔 실수 투성이었다. 계약도 안 맺고 개인 도매상에게 물건을 넘겼다가 판매대금을 뜯기기도 했고, 무리하게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하려다 실패해 몇 억원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 사장은 "다음엔 잘 하라"며 아들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는 "1세 경영인이라고 자신의 방법을 2세에게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2세가 자신의 방법대로 조직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고의 경영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성과로 보답한 아들

오 사장의 '믿음'은 오 상무에겐 더 혹독한 채찍이 됐다. 오 상무는 "혼을 내시면 혼나고 말텐데 항상 믿어 주시니 정말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제품을 싸들고 나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고추장을 팔았고, 자주 공장을 찾아 직접 콩을 나르고 장맛을 봤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하우가 쌓여 갔다. 여기에 젊은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시너지 효과가 났다. 오 상무는 감칠맛을 내는 화학 조미료(MSG) 유해성 논란이 일자 대두,밀,옥수수 등에서 아미노산을 추출 · 가공해 대체품을 개발했다. 그는 "t당 가격이 중형차값과 맞먹을 정도로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며 "작년에 이 제품으로 4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모 대기업과는 글로벌 유통망 구축도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베트남 라면 회사와 계약을 맺고 수프에 들어가는 소재 생산에 대한 기술 이전 및 원재료 수출 계약도 맺었다. 이 건을 포함한 해외시장 개척으로 내년엔 수출로만 20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 상무가 입사한 1998년 당시 40억원이었던 매일식품의 매출은 지난해 180억원(예상치)으로 4배 넘게 뛰었다. ◆각자의 위치에 충실한 '부자'

오 사장은 3년 전부터 아들을 경영 일선에 앞세웠다. 1~2년 내에는 아예 대표이사 자리도 물려줄 생각이다.

그는 "오 상무는 나보다 친화력도 좋고 시장을 보는 눈도 밝은 데다 제품에 대한 지식도 충분하다"며 "나의 책임은 아들의 장점을 살려주는 것이었고 그 임무를 다했으니 이제 물러나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오 상무는 오히려 고개를 낮췄다. 그는 "주변에 가업을 승계하는 2세들을 보면 사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직급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다 아버지 및 직원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지금은 사장이 아닌 상무이니 만큼 현재 위치에 충실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낮췄다.

그렇지만 회사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선 눈빛이 반짝였다. 오 상무는 "국내 식품시장은 포화상태인 데다 소비자 성향도 보수적이어서 빠른 성장이 어렵다"며 "소스류 개발이나 식당 사업 진출로 사업다각화를 시도하고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 2015년 매출 35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65주년인 매일식품이 100주년이 될 때까지 계속 성장시키는 것이 일생의 목표"라고 덧붙였다.순천(전남)=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