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 국회는 왜 싸우는가?

가까운 후배가 학교에서 밤낮 싸움만하는 말썽꾸러기 아들 때문에 골치를 썩었다. 어느 날 그 후배가 또 아이들을 팬 아들 때문에 학교에 불려갔다. 선생님께 싹싹 빌고 아들을 데리고 나오는 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후배가 "넌 매일 싸움만 하니.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하니!"라며 야단을 쳤다. 그러자 그 아들이 하는 말이 "국회의원하면 되잖아요!"라고 했단다. 이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요즘 구정을 앞두고 동네 노인정에 새해 인사를 다닌다. 만나는 어르신마다 하시는 첫 마디가 "제발 싸움 좀 하지 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은 이미 주먹질을 일삼는 싸움꾼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국회의원을 존경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외계인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된 이후 한번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자격지심 때문이리라.그러면 국회의원은 왜 싸움만 하는가? 물론 국회의원이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다. 1년 내내 의정 활동,지역구 활동 등으로 바쁘다. 그러다가 연말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싸움을 한다. 예산안과 주요 쟁점 법안의 처리 때만 충돌한다. 일년 지은 농사가 연말 싸움 한판에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여야가 의견이 다르다고 주먹질로 해결하려 하면 국회의 존재의의가 전혀 없어진다. 의견이 다르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절충을 하고,절충이 안 되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표결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런데 표결을 하려고 하면 몸으로 막아내고,그것을 제지하려다 보니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 국회는 다수결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셈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회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면 우리 국회는 왜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가? 긴 설명을 생략하면,여야 국회의원 각자의 입장을 당론으로 강제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독립된 하나의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왜 당론에 강제 당하는가? 다음 총선에서의 공천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같은 나라는 후보자가 지역구에서 경선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공천권을 쥐고 있는 몇몇 특정인이 주도하는 당론이 없거나,있어도 국회의원들이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 그래서 '싸움 국회'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가 공천방식을 상향식 완전경선제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것이 되지 않는 원인은 첫째가 기존 공천권자들의 기득권 지키기이고,둘째가 경선제의 폐해를 낳는 우리의 후진적 정치문화 수준이다. 대강 말하면,첫째는 정치인들의 몫이고 둘째는 국민들의 몫이다.

정두언 < 한나라당 국회의원 dooun4u@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