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ㆍ中정상회담] 사과없인 대화 없다더니…MB 대북 강경노선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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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남북관계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직후 MB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 北 군사회담 전격 수용
北-美대화 먼저 열릴 땐
북핵문제 주도권 상실 우려
G2 압박에 대화 테이블로
정부는 20일 북한이 전격 제의한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수용,'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원칙에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북한의 잇단 대화 공세를 "진정성이 없다"며 거부해왔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미 · 중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한국에는 남북대화에 나서도록 '압박'하자 우리 정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대화 테이블에 나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우리 정부가 또다시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 · 중,남북에 각각 대화 촉구
북한이 이날 오전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하고 우리 정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나절 만에 즉각 수용한 것은 미 · 중 정상회담 결과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 · 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가 필수적인 조치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언급했다. 남북이 나서서 대화를 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형성하라는 양국의 일치된 메시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남북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의제화하고 한반도 논의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도 "한 · 미 간에 협의해온 것이 잘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와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공동성명은 남과 북 모두를 압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양국 정상이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것은 그동안 대화를 거부해온 우리 정부로 하여금 대화에 나서도록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대북정책 원칙 수정하나우리 정부는 그동안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재발 방지 약속 · 사과 등)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 등을 대화의 3대 조건으로 내걸며 북측의 대화 공세를 거부해왔다. 이런 정부가 미 · 중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북측의 회담 제의를 전격 수용한 것은 미국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은 미 · 중 정상회담에 앞서 여러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에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요구해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핵무기 제조를 위한 UEP 문제를 직접적 위협 요소로 판단,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 · 중이 비록 선(先) 남북대화 기조를 확인했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자신들이 설정한 로드맵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도 정부가 원칙에서 한발 물러서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양 교수는 "우리 정부가 원칙만 내세우며 남북대화에 소극적으로 나설 경우 북 · 미 대화,6자회담이 먼저 열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이 대화 테이블에 앉기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대화 수용 배경에 대해 "북한이 형식을 갖춰 나름대로 공식적인 제안을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측이 회담 의제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견해를 밝히자"고 제의한 것은 그동안 정부가 요구해왔던 입장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구체적으로 호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