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살림하는 남편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주인공 중 한 명인 브리는 살림이 특기인 전업주부였다. 완벽한 가정을 꾸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틀에 짜인 듯한 생활이 싫다던 의사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쓰게 된 요리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저자이자 출장요리 사업가로 변신한다.

재혼한 남편 올슨은 바빠진데다 매사에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아내를 못견뎌하며 좀도둑질을 한다. 남편을 위해 회사를 팔고 전업주부로 돌아가려는 브리에게 아들은 말한다. "엄마는 새아빠를 위해 좋아하는 일을 관두려 하는데 새아빠는 왜 엄마의 일을 막는 건가요. "그런가하면 리넷의 남편 톰은 식당을 처분한 후 리넷이 재취업해 집에 혼자 남게 되자 주름제거 수술을 받겠다,중국어 공부를 위해 대학에 가겠다는 둥 안절부절못해 아내를 힘들게 한다. 살림과 집안의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은 '모던 패밀리' 속 게이 부부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아기를 입양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던 캐머런이 변호사인 미첼에게 '돈 버는 위세를 한다'며 역할을 바꾸자고 요구하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미첼은 집안일이 힘들고,캐머런은 아기가 보고 싶은 나머지 곧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간다.

국내에서 살림만 하는 남편이 7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15만6000명이 주로 한 일을 '가사'라고 응답,2003년 10만3000명보다 51.4%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많을 것이다. 구조조정 등에 따른 남편의 실직 탓일 수도 있고,아기가 태어나면 누군가 육아와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데 아내 쪽 수입(혹은 비전)이 더 많거나 좋아서일 가능성도 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늘어나는 만큼 살림하는 남편은 더 증가할지 모른다.

문제는 스스로 선택한 경우가 아니면 톰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아내가 생계를 책임진 집 남편이 아내와 비슷하게 버는 남편보다 바람 피울 확률이 5배나 높다는 조사결과는 미국에서도 살림하는 남편의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전해준다.

육아와 살림 모두 누군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남자는 바깥일,여자는 집안일이라는 틀에 갇히지만 않으면 자연스레 역할을 분담할 수도 있다. 맞벌이는 대세고 그러다보면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내보다 일찍 은퇴할 수도 있다. 편견을 벗어나면 서로 한결 편안해질지도 모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