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외부 평가 외면하는 대법원

"그런 조사 결과를 법관 인사에 반영할 필요가 있나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최근 법관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법원은 자체적으로 판사들을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회는 3년째 법관 평가를 해오고 있다. 소속 변호사들이 법정을 오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대로 법관의 자질,소양 등을 평가한다. 최근 보도된 대로 서울변호사회의 법관 평가에선 나쁜 판사와 좋은 판사가 구분됐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판사와 대면하는 변호사들은 다양한 사례를 고발(?)했다. 한 변호사는 "사건 관계인에게 '잘났어 정말! 인간적으로 그렇게 살지 마라'고 모욕을 주는 판사가 있다"고 전했다. "판결문이 똥인 줄 아느냐","귀가 어둡냐"는 식의 막말을 들었다는 변호사도 있었다"판사도 사람인 만큼 과중한 재판업무에 시달리다보면 짜증을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당사자와 변호인이 없지 않다는 주장이다.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고 했다. 판사들 사이에선 "평가에 참여한 변호사 숫자가 500여명밖에 안되는데다,선수가 심판을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러나 평가에서 나타난 판사들의 '막말'과 강압은 변호사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노인에 대한 판사들의 무례한 언행은 이미 여러차례 보도돼 공분을 샀다. 더 큰 문제는 변호사들의 평가결과를 대법원이 마뜩찮게 여기고,판사 소양 함양에 참고조차 하지 않는 태도다.

판사 평가가 제3의 기구에서 조사된 것이 아니라 공정성과 객관성 면에서 허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울변호사회 평가를 보는 법률 수요자들이 변호사회 측에 기우는 것은 왜일까. 재판에 한번이라도 가 본 법률수요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미국의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존경하는 판사님(your honor)'이라고 부른다. 판사들이 변호사와 일반인으로부터 진심어린 '존경하는 판사' 소리를 듣도록 하기 위해선 대법원이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이현일 사회부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