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자문형 랩의 2년차 징크스

프로야구에는 '2년차 징크스(sophomore jinx)'가 있다. 루키 때 펄펄 날던 선수가 2년차에 죽 쑤는 현상이다. 선수 본인의 자만심,상대팀의 철저한 대비,팬들의 높아진 기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통계학자들은 2년차의 부진을 징크스로 여기지 않는다.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가 늘수록 진짜 실력(평균)에 수렴하는 '평균으로의 회귀'로 본다. 한 해 잘했다고 계속 잘할 것이란 기대는 오류라는 얘기다.

자문형 랩어카운트가 본격 성장세를 탄 지 2년차를 맞았다. 증권회사가 투자자문회사의 자문을 받아 운용하는 자문형 랩은 작년 초만 해도 5000억원 미만이던 시장규모가 1년 새 10배가 넘는 5조원대로 불어났다. 작년 상반기 '자문사 7공주'로 빅히트를 치며 가속도가 붙었다. 데뷔하자마자 홈런을 펑펑 때려낸 것처럼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린 것이다. 때문에 펀드가 기성복이라면 자문형 랩은 맞춤복에 비유되기도 했다. 자문형 랩이 2년차에도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초창기에는 '한땀한땀 정성을 들인' 맞춤복일 수 있었다. 덩치가 작아 회전(종목 교체)이 수월했다. 수익률 끌어올리기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과도한 쏠림에 의한 부작용을 염려해야 할 상황이다. 지난달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일임형 자산 운용수익률이 코스피지수 상승률보다 높은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자문사도 용빼는 재주는 없었다는 얘기다. 한 자문사는 19개 증권사를 통해 19가지 자문형 랩을 출시했다. 19개 상품의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이쯤 되면 맞춤복이 아니라 대량생산 기성복과 다를 바 없다. 당초 최소 1억원 이상의 고액 자산가를 겨냥했던 자문형 랩이 최하 1500만~3000만원이면 누구나 살 수 있게 된 결과다.

수익률 면에서도 자문형 랩이 'S커브'의 정점(S자 윗부분의 횡보 · 하락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2005~2007년 급성장한 주식형 펀드가 덩치가 커지면서 내리막길을 탄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다. 주식형 펀드는 그나마 다양한 투자종목으로 쿠션을 두지만,자문형 랩은 기껏해야 10개 미만의 소수 종목으로만 굴려 하락장에선 더 위험할 수 있다. 새해 들어서도 자문형 랩은 내놓기 무섭게 매진이다. 고수익의 '전설'만 부각된 결과다. 이런 쏠림의 이면에는 증권사들의 장삿속도 숨어 있다. 원금의 2%를 떼는 자문형 랩은 가장 짭짤한 수익원의 하나가 됐다. 그것도 스폿형(목표달성형) 랩으로 만들어 팔 때마다 2%씩 챙겼다. 심지어 한 운용사는 같은 계열 증권사가 펀드는 안 팔아주고 자문형 랩 판매에만 치중하자 사장들끼리 외면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자문형' 간판만 달면 다 통하는 행태에 외국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리스크를 따지지 않고 단기 수익에만 연연하는 국내 증시의 조급증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 린치는 13년(1977~1990년) 동안 단 한 해도 자신이 운용한 마젤란펀드의 수익률이 1위는커녕,15위 안에 든 적도 없다. 그럼에도 연 평균 29%의 최고 수익률로 월가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가 됐다.

자문형 랩의 지나친 쏠림을 막으려면 주식형 펀드처럼 아예 자문사 별 수익률부터 공시하는 게 낫다. 코스피를 따라가기도 버거워하는 자문사들이 많지만 투자자들은 잘 모른다. 언제까지 묻지마식 단타투자를 부추길 것인가.

오형규 증권부장 ohk@hankyung.com